개정판 전에는 동행한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이 실려 있지 않았나 보다. 이 책에는 사진이 실려 있는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거의 속옷에 가까운 짧은 바지를 입고 있는 하루키의 사진에 시선 둘 곳을 몰랐다. 하루키는 젊었고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아이지만 척박하기 그지없는 그리스, 터키 여행을 읽고 있자니 <시드니!>와는 또 다른 나를 기억하게 되었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아이들, 시간을 어찌할 바 모르는 남자들, 삶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모습이 잠깐씩 드러났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저자를 따라 낯선 땅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던 건 1988년의 나도 그런 모습이었을 거란 데서 오는 동질감이었다. 두메산골의 9남매로 태어나서인지 오래전부터 나보다 몇 십 년 차이나는 어른들과 어릴 적 얘기가 자주 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야 아궁이가 아닌 보일러와 싱크대가 집에 들어왔고, 20분 거리에 큰 도로가 생기고 포장이 되었다. 한 시간이 넘는 학교와의 거리를 걸어 다니기도 했고, 아침을 굶고 갈 때면 엄마가 가마솥에서 긁어 준 누룽지를 손에 쥐고 간 적도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라는 게 낯설다고 하는데 88년도의 하루키가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봤다면 사진 속에서 만난 터키 아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 같지 않아 이상하게 오버랩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개인적인 호기심과 열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리스와 터키 여행기를 읽고 있으면 이렇게 힘든 여행을 왜 했을까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사진에서 본 저자의 젊은 모습이 낯설었던 것처럼 젊었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었을까? 특히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여자가 한 명도 없는 아토스 반도의 수도원 기행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지켜본 입장에서는 희극에 가까울 정도로 생고생이 가득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수도사들이 수행하는 곳이기에 편안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형편없는 식사에 좌절하고, 배고픔에 인간의 본성을 보기도 하고, 궂은 날씨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을 지나야 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무사히 저 섬을 나올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섬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정해져 있었고 헤매다가 결국 배를 못 타게 되었을 때는 아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함께 경험한 것처럼 생생한 이야기들 속에서 정말 진지하게 드러난 생각이 너무 웃겨서 혼자서 킥킥 대기도 했다. 양 문화 중심의 터키에서 양 냄새에 질린 나머지 화폐로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아토스의 험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수도사들이 가까이 오기 전까지 ‘승려인지 거지인지 큼직한 원숭이인지 가까이 올 때까지는 구별할 수 없다’는 체념 섞인 이야기를 할 때면 저자의 고생은 저만치 날려버리고 그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라 실컷 웃어버렸다.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193쪽)
분명 빛바랜 여행기라 느끼면서도 생생히 살아 있는 기분이 드는 건, 그 안에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어쩜 기억 속에 갇혀 있던 공기를 꺼내고 기억해 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거의 30년 전의 여행기를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것도 그저 신기할 뿐이고, 완전히 동떨어진 나를 새롭게 반추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