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잔혹하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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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에서 열린 올림픽에 관한 책을 나는 왜 그렇게 재밌게 읽었을까? 저자처럼 올림픽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2000년이면 내가 스무 살 때다. 내가 스무 살이었던 때가 벌써 17년이나 지나버렸다니,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2000년도에 나는 여전히 스무 살이었고 올림픽이 열렸다는 사실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무엇을 했는지도 희미하니까. 그래도 전혀 무시할 수 없었던 건, 스무 살 때 치러진 올림픽에 관한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뭘 하고 관심을 가졌는지 계속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 17년 전에 열렸던 올림픽을 지켜보다 보니 시간을 거스르다 못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시공간을 거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국제적인 행사였으니 텔레비전에서 실컷 중계를 해주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청한 기억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스무 살을 맞이하고 고민하고 이래저래 살아가고 있을 때 저자는 시드니에서 3주 동안 올림픽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생생하게 만난 셈이다. 다만 요즘에 우리가 보고 듣는 형태의 올림픽과는 다르다. 어찌 되었든 글로 만난 올림픽이라 해도 중계는 중계지만 개인적인 시선도 배제할 수 없기에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를 부담 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호주의 역사며 인종문제,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 그리고 하루키가 낯선 땅에 가면 잊지 않는 그 나라 음식과 와인과 맥주, 소소한 에피소드와 시드니에서 치러지고 있는 많은 경기의 관람자의 시선이 모두 섞여 있었다. 나 역시 저자처럼 아침에 일어나 경기장을 관람하고 관련 글을 쓰고 잠이 들고 다음 날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생활에 3주간 젖어 있는 기분이었다. 어떠한 기억도 없는 17년 전의 올림픽이 그렇게 툭 튀어나왔음에도 점점 동화되어 갔던 건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올림픽을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메달 개수로 그 나라를 평가하는 것도, 최선을 다한 모습보다 결과만 중시하는(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것도 늘 불편했다. 당연히 관심도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약을 해주면 텔레비전 앞에 코를 박고 흥분이 되기도 한 적도 많다. 메달을 땄을 때 선수와 종목의 존재를 겨우 알아차릴 때도 허다하지만 과연 선수들이 정말 그것들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지, 그 외에 것들을 보여주는 건 무리인지 그런 생각이 늘 따라다녀 잘 보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스포츠는 잔혹하다. 그렇게 잔혹한 스포츠에 맞서기 위해서는 반대로 스포츠를 잔혹하고 다룰 수밖에 없다.

(115~116쪽)


잔혹하고 때론 폭력적이기도 한 스포츠를 저자의 눈으로 좇으면서 모든 시선이 나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그건 독서의 또 다른 묘미다) 올림픽 자체를 다른 시선으로 본 것만은 확실했다. 저자의 많은 에세이를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국적이 처음으로 느껴졌던 글이기도 했고(왜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어렵다), 특별취재단 일원으로 시드니를 방문한 것임에도 하고픈 말은 거의 다(?) 하는 것에 후련함과 확고함을 엿보기도 했다. 생전 처음 관람해야 하는 경기를 보면서 ‘나는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걸까?’ 라고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소설가의 시선으로 보는 경기 중계는 생생했다. 그가 좋아하는 육상 경기에 애정을 듬뿍 쏟고(책의 시작과 끝에 실린 선수들의 인터뷰만 봐도), 특히나 현장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캐시 프리먼이란 선수가 가진 무거운 짐과 감동의 무게는 글로도 온전히 전해지고 있었다.


올림픽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이 글이 아니었다면 선수들이 가진 ‘저마다의 싸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올림픽이 끝난 뒤의 쓸쓸함과 평화의 공존,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가야만 하는 고충을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된 올림픽의 이야기임에도 빛바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역시나 올림픽을 좋아한다거나 그런 변화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 증발되어 버렸던 순수한 땀의 의미는 조금 알게 되었다. 경기장 안에서 ‘선수가 투쟁심을 잃는다면 그건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싸움일지도 모른다는 진부한(?) 결론도 말이다.


시간적 배경이 그래서인지 스무 살의 내가 자꾸 떠올랐지만 책을 덮었을 땐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나의 기억에 전혀 없는 또 다른 일들을 실컷 경험한 셈이지만, 그런 일상 위에 또 다른 공간에서 나는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 묘하게 겹쳐졌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함께도 의미하지만 다양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순간을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면 좀 오글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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