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할 때의 문제는 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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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일 년 동안 기고한 글을 모아놓았는데 스스로 ‘본업이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으니 나 역시 별 부담 없이 읽어 나갔다.『1Q84』를 탈고한 뒤 에세이가 쓰고 싶어졌다고 했고 나름대로의 스타일로(타인의 험담은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변명이나 자랑을 되도록 하지 않기, 시사적인 화제는 가능한 피하기) 쓴 글들을 모았다. 이런 스타일 때문에 주제가 한정적이 되어버렸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 특정 연령대나 주제를 봐가며 쓴 글들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와 수다 떠는 기분으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종종 중복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힘이 빠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루키 에세이를 연 초에 집중적으로 읽는 나에게는 점점 그게 반가워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젊을 때는 같은 이야기는 그렇게 듣기 싫더니, 요즘에는 저자와 나와 옛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물론 직접 마주한 적은 없고 오로지 책으로의 만남이지만) 중복되는 이야기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정말 시답잖은 수다도 있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 나와 상관없지만 재밌게 듣게 되는 이야기 등 주제를 나눌 일도 없지만 어떤 메시지를 위한 읽기가 아닌 그냥 이야기 그 자체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긴장감 없이 편히 읽어 나가다 ‘수집(마음을 쏟는 대상)할 때의 문제는 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그걸 이해하고 사랑하는가, 그런 기억이 당신 안에 얼마나 선명히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 (123쪽)’ 란 문장과 마주하고 온 집안을 가득 채운 책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싹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책을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늘 상반되는데 질적인 서재를 만들어야겠단 다짐이 생기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까지는 혼란스런 내 책들이지만 서서히 정리해 나가야겠단 의지가 솟았다.

사람은 때로 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을 음악에 실어 그것의 무게로 제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음악에는 그런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219쪽)

조금 속독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지만 종종 나를 멈추게 하는 이런 문장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시간을 들여 책을 읽은 보람을 느끼게 한다. 보람을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내가 정의하지 못한, 혼자서만 간직했던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렇게 단박에 정리해 버리다니. 저자가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음악이 주는 기능을 알았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러웠다. 나는 이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올라오는 조금은 우울하고, 어둡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뭔지 몰랐다. 내 자신이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느라 그랬다니. 이제야 뭔가 의문이 풀린 듯 했다.

하루키 에세이의 매력은 이런 것 같다. 그냥 읽다가 완전 공감하는 뭔가를 하나씩 만나는 것. 굳이 만나지 못하더라고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기에 오랜만의 만남이 괜찮았다. 이제 다음 에세이는 뭘 읽을까? 책장 앞에서 즐거운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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