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된장국은 나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by 안녕반짝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엄마가 끓여준 시래기 된장국이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편에게 겨우 이 말을 해 놓고 정말 서러워서 ‘엄마!’ 하고 펑펑 울어 버렸다. 첫 아이를 임신한지 3개월이 됐을 무렵이었고, 입덧으로 임신한 사실을 알아 차렸을 만큼 이후로 음식을 아예 못 먹고 있었다. 하루 종일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기분이었고, 배는 고픈데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매일매일이 고통이었다. 그때만큼 먹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왜 먹어야 하는지, 먹는 것이 어떤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고민하게 만들었고 여느 때보다 예민해진 후각은 음식 자체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에게 좀 미안하다. 음식 냄새를 못 맡으니 저녁도 먹고 들어오라고 했고, 냉장고 문이라도 열라치면 특유의 그 냄새가 안방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 냉장고를 갖다 버리라고 소리치곤 했다. 집 안은 갈수록 삭막해져갔고, 그런 짓을 두어 달 정도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엄마가 끓여 준 시래기 된장국이 너무 먹고 싶다고 울자 남편이 친정에 다녀오라고 했다.


임신 초기가 막 지난 시점에서 6시간 거리의 친정을 혼자 내려간다는 게 좀 위험하긴 했다. 하지만 평일에다 워낙 먼 거리라 선뜻 남편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출발했음에도 버스와 기차를 몇 번씩 갈아타느라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엄마에게 미리 언질을 해두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밥상에는 시래기 된장국, 꽃게탕, 오징어무침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시래기 된장국은 고소했다. 치아교정 중이었음에도 꽃게를 야무지게 부셔 살을 발라 먹었고, 새콤한 오징어와 미나리 무침은 죽은 입맛을 되살려줬다. 오랜만에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고 나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석 달 동안 못 먹었던 음식들이 즐겁게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에 감사했고, 예민했던 후각이 엄마 음식 앞에서는 무뎌졌다. 며칠 동안 친정에 머무르면서 엄마가 한 솥 끓여놓은 시래기 된장국을 매 끼니마다 먹었다. 연로한 엄마를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렇게 내 입맛에 익숙한 엄마의 음식을 먹고, 시골길을 거닐고,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보면서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일할 자신. 가족이 없는 도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단지 엄마가 보고 싶었고, 엄마가 끓여 준 시래기 된장국이 먹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것을 누리면서 뜬금없게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졌다. 한때는 답답한 시골이 싫어서 무조건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가 보고 나서야, 결혼을 하고 입덧 때문에 매일 고통의 연속의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가 가장 머물고 싶은 곳은 엄마가 있는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쉽지 않았다. 서른 살에 대도시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정말 원하는 직장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일하고 퇴사를 하자마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지만 내가 전직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기에 그곳에서 비슷한 일을 계속 하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의 음식을 먹고 내 집으로 돌아오니 이곳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동안 사귀었던 좋은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 아쉬울 뿐, 내가 좋아하는 일도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그 모든 걸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 덕분에 내가 있고 싶어 하는 곳이 고향임을,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고향에 다녀 온지 약 한 달 반 만에 나는 고향으로 아예 돌아왔다. 남편에게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부탁했고, 남편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직장을 정리하고, 내 고향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고 난 뒤 심리적으로 안정이 많이 되었는지 음식을 제법 먹게 되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가까이 있다는 안정감과 엄마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가며 엄마의 음식을 먹고, 아예 고향으로 이사까지 온 뒤 태어난 아이는 지금 7살이 되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너는 외할머니의 시래기 된장국 때문에 건강하게 태어났다고 말하는데, 아이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기 일쑤다.


친정에 엄마를 보러 가면 종종 냉동실에서 꽁꽁 얼린 시래기를 챙겨준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나를 알기에 양념까지 해서 얼린 시래기를 쌀뜨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라고 알려준다. 어릴 적에는 시래기 된장국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래기 된장국이 밥상에 올라올 때마다 궁상맞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20대가 훌쩍 지나고 나서야 시래기 된장국만 보면 밥을 말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래기 된장국이 나오면 투덜대며 밥을 후루룩 말아 먹고 밥상을 벗어났던 일. 그 기억이 어느 순간 올라와 시래기 된장국만 보면 밥을 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맛이 없다는 투덜거림이 섞인 밥 말기였다면 지금은 나를 키운 음식으로 기억하고 먹게 된다.


뜬금없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하던 아이가 오늘은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엄마의 시래기 된장국을 가장 좋아하는 것처럼 아이도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기억하게 될까? 내가 해 준 음식으로 건강하게 클 수 있을까? 그런 음식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곧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도착할 시간이다. 얼른 소고기와 무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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