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무릎 수술을 하셨다. 76년 동안 쓰신 무릎 연골이 닳아서 가족들과 상의해 고심 끝에 수술을 하자고 설득해 지난 월요일에 왼쪽 무릎을 수술하고, 어제는 오른쪽 무릎을 수술하셨다. 어제 병원에 가고 싶었으나 둘째가 감기로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 애만 태우다 오늘에서야 병원에 가게 되었다.
무릎 수술 잘하기로 유명한 병원은 여수 공항 근처에 있다. 우리 집에서 택시를 타면 14,000이 나오고 드물지만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오늘은 죽으로 식사를 하신다고 하기에 병원 죽보다는 사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전화로 전복죽을 주문해 놓고 추위를 뚫고 10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병원에 가는 버스가 20분 뒤에 온다는 어플 정보를 보고 시간 맞춰 나갔는데 죽을 찾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버스 정보가 뜨질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25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정보가 떴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기에는 너무 추웠다. 대신 공항에서 하차하는 버스가 3분 뒤에 도착이라 그 버스를 타고 가서 공항에서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지난주에도 버스 시간이 안 맞아 그렇게 타고 갔더니 택시비가 4,000원이 나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바깥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리가 좀 불편하신지 느릿느릿 택시를 탔다. 그게 의심의 눈초리였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드러났지만 말이다(난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이 아니라 시내버스에서 내린 손님이었으므로).
"안녕하세요. 애양원이요."
택시에 타자마자 인사를 하고 행선지를 말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대뜸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버스를 타고 가지 뭐 한다고 택시를 타요."
완전히 황당했다. 말문이 나오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자,
"공항에서 두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애양원을 간다고?"
완전 어이가 없었다. 겨우 맘을 추스르고,
"그럼 내려주세요."
"내리면? 승차거부로 신고할라고?"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공항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들은 주로 장거리 손님을 태우는데 다음 비행시간까지 두 시간을 기다리다 겨우 태운 게 나였고, 나는 4,000원 나오는 거리를 가자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나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승차거부 신고는 무섭고, 손님한테 짜증내는 건 괜찮다는 건가? 씁쓸했다.
"왜 저한테 짜증을 내세요?"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난폭운전을 시작했다.
나에겐 짜증이 유난히 나는 날이 있다. 그런 시기도 있다. 분명 이런 상황이라면 아저씨에게 짜증을 내도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짜증을 내는 아저씨가 황당했지만 불쌍했다. 불쌍하다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할 수 없지만 나에게 짜증을 내고 나면 저 아저씨는 기분이 나아질까?
나 같으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
하필 택시비도 만 원 지폐 밖에 없었다. 이 아저씨의 감정 상태로는 만 원 지폐 낸다고 짜증을 낼 것 같아서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찾는데 삼천 원이 나왔다. 택시비에서 천 원이 부족하다.
그때 형부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 가고 있냐고 버스 타고 가고 있냐고 하기에, 상황 설명이 애매해서 그렇다고 곧 내려야 한다고 하니 서둘러 끊었다. 내 손에는 죽이 들려 있었고 목적지는 병원이니 병문안을 간다는 것을 알 테고, 게다가 통화하면서 엄마한테 곧 도착한다고 했으니 기사 아저씨에게 병원 가는 목적이 충분히 전달되었으리라 생각되었다.
내릴 때가 되어서 잔돈을 더 찾고 있는데 보조석 밑에 천 원이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위치였다. 고개를 숙여 천 원을 주웠다. 순간 이 천 원을 보태 4,000원으로 택시비를 낼까 생각이 들었지만 짜증이 잔뜩 나 있는 아저씨한테 천원 덜 낸다고 뭔 영화가 있으랴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3,900원이 나왔다. 난폭운전의 대가로 100원이 줄어들었다.
기사 아저씨께 만원을 건넸다. 아저씨는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잔돈을 세고 있는 아저씨의 팔걸이 옆에 천 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건 의자 밑에 떨어져 있던 거예요."
나는 택시에서 내렸고 아저씨는 내게 잔돈 6,100원을 주었다.
항상 택시에서 내리면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다. 택배를 배달해 주거나, 택시 같은 일상의 자잘한 수고로움을 해주는 분들에게는 절대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니 나오지 않았다. 먼 거리가 아니라고 짜증을 내는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했을까? 그 정도의 무례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이 택시 기사분이 잊히질 않는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다.
그러나 씁쓸한 맛이 더 짙다. 왜 나한테 짜증을 내냐고 욕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아서다.
내 나름대로는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입원한 엄마한테 가는 길이었고 그 길을 우울한 기분으로 가기 싫었다.
그럼에도 택시 기사 분을 생각하면 씁쓸했다.
4,000원 짜리 나대신, 만 원이 훌쩍 넘는 장거리 손님을 태웠으면 짜증이 덜 났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나라면 부끄러울 것 같다. 그 아저씨에게 하루가 어땠을지 모르지만, 엄마 병문안을 가는 손님에게 짜증을 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해도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하루 종일 나는 그런 일을 당했다는 짜증보다 씁쓸했다.
그리고 이 글은, 일방적인 위로를 들으려는 내 마음이 짙게 드러나므로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