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긴 교정치료, 그리고 낯선 남자의 대시?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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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냉면이었다. 2011년 여름에 냉면을 먹다 도무지 이빨로 끊어지지 않아 숨이 막힐 뻔 했다. 그러다 근무하는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고 심한 부정교합과 냉면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말을 했더니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보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부정교합에 콤플렉스가 있던 차라 바로 대학병원에 갔다. 그때는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 연대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예약을 하고 상담과 진료를 받고 나오니 진료비가 50만원이 나왔다. 30분도 안되어 50만원을 써버린 것이다.


병원에서는 양악수술을 권했다. 수술은 싫다고 하자 그럼 교정으로 잡아보자고 했다. 초진비가 아까워서 다른 병원은 가지도 못하고 바로 연대치과에서 교정을 시작했다.


2011년 8월 29일었고, 당시의 나는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교정 기간이 2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설마 그사이 결혼을 하겠어 싶어 덜컥 시작을 했다.


내 부정교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랜 콤플렉스일 정도로 심했다. 아랫니가 윗니를 덮고 있는 모습에다 양쪽으로 뻐드렁니가 있어서 친한 친구들 앞을 제외하고는 활짝 웃어본 적이 없다. 억지로 아랫니를 윗니 밑으로 넣으려고 하면 턱이 달달 떨려서 의학의 힘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라는 판단을 오래전부터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비용 때문에 그동안 교정할 생각을 못했다. 당시 나에겐 직장 생활하면서 모아둔 일 년짜리 적금이 만기 된 상태라 그걸 그대로 치과에 가져다주었다. 아주 공손히. 내 일 년의 직장 생활이 고스란히 치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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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다. 정말 그렇다.


교정을 시작하고 약 두 달 뒤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6개월 뒤에 결혼을 하고(웨딩사진도 결혼식도 모두 교정기를 끼고 했다), 또 6개월 뒤에 다시 고향인 여수로 돌아와서 넉 달 뒤에 아이를 낳을 거라곤 교정을 시작할 땐 상상도 못했다. 너무 스펙터클해서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문제는 진료였다. 2년 안에 끝난다고 했으니 여수에서 일 년만 다니면 끝나겠지 싶었다. 그러나 출산 후가 문제였다. 아이를 두고 치과 진료를 받을 수도 없었고,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계속 진료가 미뤄졌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자 꾸역꾸역 아이를 데리고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볼 동안에 잠깐 아이를 봐 줄 사람이 필요해서 방학 때는 조카들에게 부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했다. 그렇게 온갖 고생을 하며 진료를 받았다.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료는 더디기만 했다. 교정을 위해 빼 낸 네 개의 치아 홈이 메워지지 않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게 잘 움직이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몇 시간을 달려 병원에 가도 고무줄 한 개만 바꿔주고 끝낸 적도 허다했다.


지방으로 옮겨보려 문의해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대답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둘째를 낳고,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둘째를 또 꾸역꾸역 데리고 다니고, 둘째가 어린이집에 간 이후까지도 이어질 줄은 몰랐다.


올해 8월에 6년을 찍었다. 그 사이 담당의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담당 교수는 그대로였지만 실질적인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모두 기간을 채우고 떠났다. 그리고 며칠 전 유지 장치만 빼고 교정기를 모두 뺐다. 교정기가 너무 오랫동안 몸의 일부처럼 끼워져 있어서 한동안 어색했다. 고정 철사를 죄었을 때의 단단한 구속감(나 변태인가?)이 그리웠다. 자꾸 혀가 교정기를 찾고 있었고 양치질이 너무 쉽게 끝나버리는 게 어색했다. 그리고 내 치아가 정말 가지런히 놓인 것도 이상했고, 팔자 주름도 없어지고, 뭉툭했던 코가 아주 조금 높아진 것도 이상했다. 그렇다고 외모에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내 외모는 그냥 그랬으니까.


어느새 나는 이렇게 나만 기억하는 변해버린 얼굴에 익숙해져서 그 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 사진을 보면 단박에 드러나겠지만 뭐 하러 굳이 기억을 되돌릴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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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 진료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두 번은 더 가야하고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라는 말도 들었으나 그 뒤는 모르겠다. 두 번은 가고 나중은 정말 모르겠다. 치과 갈 때마다 가기 싫어 몸부림 치고 교통비, 진료비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게 싫다.


그리고 교정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생명에 지장 없으면 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내가 6년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고. 그렇다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막 예뻐지는 것도 아니며 치아가 한 번 움직이면 약해지니 그냥 튼튼하게 두라고 말이다. 권고일 뿐 적극적인 개입은 아니다.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기에 내가 해보니 힘든 것들 투성이라 그냥 단점을 더 많이 말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여전히 아이들 하원을 주변에 부탁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 비행기를 타고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면 호강한다고 하는데, ktx 보다 저렴해서 타고 다니는 것 뿐 비행기가 편하긴 하지만 솔직히 무섭다.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어떻게 될까봐 늘 기도하게 된다.




진짜 교정이 끝나간다. 내가 힘든 건 그냥 감당하면 되는데 신세 진 사람이 너무 많다.

진료 때마다 우리 아이들을 봐주었던 가족과 수많은 지인, 그리고 남편.

갈 때마다 아이를 봐주고 밥도 사주는 고딩 친구.

가지런한 치아에 대한 만족감보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다.

내 치아를 볼 때마다 신세진 사람이 많아 마음이 더 복잡해 질 것 같다.




덧.


월요일에 진료를 가느라 역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서 오후 비행기로 내려왔다.

그날은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남편이 조퇴를 하고 아이들 하원을 시켰다.


내려오는 비행기 안에서 앉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아침에 10시 비행기 타지 않으셨어요?"

"네? 아, 네 10시 비행기 탔는데요."

"아침에도 제 옆에 앉으셨어요."

"아, 그랬나요."


비행기 안에서 책 보느라 옆에 누가 앉았는지 신경도 안 썼고, 음료 서비스로 받은 커피를 맛있게 먹은 기억밖에 없다. 아, 그러고보니 책 보면서 사선으로 보였던 다리를 달달 떨고 있던 사람이 이 사람이었구나.


그때부터 어색해져 버렸다. 피곤해서 자려고 했는데 내게 알은체를 해 온 창가의 남자 때문에 편하게 잠도 못자고 이미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눈이 아파 읽을 수도 없었다. 음악만 내리 듣고 또 음료서비스로 나오는 커피를 마시고 도착할 시간만 기다리다 비행기가 멈추자 부리나케 복도로 돌진했다. 혹시나 말을 걸까봐서. 물론 혼자 오버한 거다. 하지만 처음 본 사람이 그렇게 말을 걸어 온 이상 다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있어서 마중도 못 나온 터라 택시 아니면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히니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하얀색 승용차가 후진을 해오더니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저요?"

"아까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인데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다 드릴게요."

"아, 네. 저는 버스타고 가면 돼서 괜찮습니다."

"아, 그러세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그러고는 민망한 목례를 하고 갔다. 속으로는 어색하고 무서웠으면서 그런 남자한테 나도 모르게 인사까지 했다.

헉.

분명 웃긴 상황인데 무서웠다.

결혼하고 외간 남자가 나한테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항상 아이들을 달고 다녔으니 그렇기도 하고 살이 빠지기 전까지 뭐 얼굴에 썬 크림도 안 바르고 다녔으니 당연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아줌마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날 복장은 임부복으로 입었던 롱티에 살 쪄서 한동안 못 신었던 까만 스타킹, 그리고 남편이 버리려는 걸 내가 입겠다고 해서 걸치고 나온 점퍼에, 여름에 큰 아이 등하원 시키느라 더워서 산 까만 모자에, 얻은 파란색 에코백을 들고 있었다.


이런 내가 아줌마로 안 보였다는 게 신기해서 마음 같아서는 '제가 몇 살로 보여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막상 저런 상황이 되니 무서워서 도망치기 바빴다.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도 경계하게 되는데 하물며 이런 상황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 결혼했고 애가 둘이나 있어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 남자는 아침에 자기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줌마가 또 앉아서 신기해서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오는 길에 아는 동생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며칠 지나고 보니 신선한 사건일 수도 있는데 너무 진중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딱 한마디 하고 만다.


"왜? 그 남자 못 생겼나 보지?"

"응. 내 스타일이 아니더라고. 잘 생겼으면 어찌 해볼까 했는데."

"쳇"


이런 목석같은 남편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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