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하라 슈사쿠 <사우스포 킬러>
누군가가 나를 비방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분노가 먼저 일 테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정당화 시키고 똑같이 상대방을 비방하기에 바쁠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함정이라면? 증거까지 확실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면? 과연 나를 믿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사우스포 킬러』의 주인공 사와무라 와타루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도피하고 말았을 것 같다. 그처럼 냉정하게 반응하지도, 차근차근 함정을 빠뜨린 사람을 찾아 헤매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근원적인 용기가 부족하다는 고백과 함께 그럴만한 혜안과 방법이 뒷받침 될만한 구실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대도 말이다.
인기 프로구단의 좌투수 사와무라는 귀가 중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얼마 뒤 그를 비방하는 투서와 함께 폭행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된다. 순식간에 승부조작 투수로 몰리게 된 그는 하루아침에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기로 다짐한다. 인기 구단의 선수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한 그였기에 친한 동료도, 극성맞은 팬도 없었지만 평상시 그를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조금씩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우연히 파티장에서 만난 배우 미레이도 그를 믿어주는 눈치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폭행을 당하고 결국 2군으로 밀려나고 만다.
승부조작을 뒤집어 씌우며 사와무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배후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와무라가 조금씩 조사해 갈수록 밝혀지긴 했지만 속도감 있게 진행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책을 놓을 수 없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작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대상을 겨냥하지 않은 차분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오로지 야구 이외에는 특출난 것이라곤 없는 주인공이 함정에 빠진 스스로를 구출해 나가는 모습에 공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진지함과 진정성은 조금씩 신뢰를 얻어 가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대편도 만만치 않았다.
사와무라는 서두르지 않는다. 2군으로 떨어졌든 1군으로 복귀하든 주변의 비아냥거림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억울함을 벗어내려 최선을 다한다. 그를 도와주는 손길이 분명 있긴 했지만 분노를 증오로 전환하지 않는 차분함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사와무라를 곤경에 빠뜨리게 한 인물과 원인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사와무라가 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와무라가 분명히 승부조작을 할 거라는 투서와 함께 경기 전날 등판할 수 없게 감금 폭행을 당했을 때도 뭔지 모를 긍정의 힘을 불태웠다.
자기를 함정에 빠트린 사람이 동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이미 자기 뿐만 아니라 여러명의 좌투수들이 이런 방법으로 퇴출되거나 불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사와무라는 차분했다. 이번에는 절대 위험에 빠지지 않고 꼭 정당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해. 어렸을 때 안 배웠어?” 296쪽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모든 것을 말하고 정당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음에도 사와무라는 등판한다. 자신이 승부조작을 할 거라고 말한 경기에 만신창이로 나타나 힘들게 경기를 치러낸다. 마지막 아웃카운터를 잡아낼 때는 소름이 돋고 말았다. 자신의 가능성, 더불어 상대편 타자의 잠재력까지 끌어내주는 장면은 압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사와무라 와타루가 힘겹게 자신의 누명을 벗기고 그 이유와 대상을 찾아냈을 때 조금은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동료였고, 그 이유라는 게 사람의 생명을 해할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거창해야지만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어떤 이유든 간에 사람의 목숨을 해하고 인생을 망치려 했다는 점은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박한 야구지식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동떨어진 느낌을 갖게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묘사. 차분한 전개와 어리석을 정도로 담담한 주인공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승부조작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려 했던 무거운 죄질을 담고 있지만 암울하지도, 분통터지지도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던 주인공의 말이 이미 뇌리에 박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