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는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는 마성의 기예.

by 안녕반짝



책을 읽다 완전히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커피에 미쳐(?)있지만 20대 때는 커피보다 잎차를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에서도 다도를 즐기겠다고 다기세트까지 구입해놓고 다양한 잎차를 갖춰놨었다. 비오는 날은 청승맞게 가야금 음악(곡명은 비틀즈의 ‘let it be'였지만)까지 틀어놓고 차를 마시면 뭔가 차분해지는 게 좋았다. 이제는 찬장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다기세트가 이 소설을 읽다가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다도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의 이야기인지라 경계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잠시나마 차의 매력에 빠졌던 내가 떠올라 멈칫해졌다.

다도는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는 마성의 기예. 다도에 탐닉하면 사람은 자기를 잊고 욕심과 허영에 빠지게 되지.
(36쪽)

리큐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을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여러 가지의 다도의 의미가 드러난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다도의 매력에 빠져 모든 걸 다도로 이야기하는 리큐. 그의 삶은 다도로 시작해서 다도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도에 입문한 시기는 따로 있지만 다도를 하기 위해 그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그에겐 인생의 전부였다. 삶의 굴곡이 모두 다도와 함께였다. 그래서 특이한 그의 다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의 뜻을 거스르면서 할복하게 된다. 다도라고 하면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리큐의 다도는 담백한 무언가가 있으면서도 많은 것들이 얽혀있었다. 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리큐는 히데요시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줘야 했고, 때론 그에게 어려운 대답도 들려줘야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할복하게 되었지만 그가 평소에 말해온 다도의 색깔과 적확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차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미를 감상한다.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행복. 다석을 만들 수 있다는 기쁨. (284쪽)

리큐가 다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나 역시 온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다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다도로 인해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즐기는 행복을 느끼는 것. 그럼에도 그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의외로 컸지만 올곧은 심성만큼 그의 모든 삶이 그럴 거라 생각했다. 소설의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가 오랫동안 간직했던 조선 여인에 대한 사랑, 하지만 많은 여인을 사랑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실망과 의아함을 갖기도 했다. 그가 다도로 이룬 성과보다 내면의 모습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그와 결합이 안 되어 실망을 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실재했던 인물의 이야기에 허구를 덧붙인 것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나에게 낯선 다도여서 많은 부분을 낱낱이 만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리큐가 보여준 다도, 다도로 보는 세상, 다도에 담긴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다도에 집착하고 아름다움에 빠져 사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력이 담겼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취해 살다가,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면 리큐도 기분이 묘할 것 같다.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이 기묘한 기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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