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느 쪽인지를 아는 것이다.

by 안녕반짝


이 책을 읽다가 책장에서『빨강 머리 앤』을 꺼내왔다. 이때다 싶었고 한 권이 아닌 완역을 제대로 만나고 싶단 생각에 이 책 저 책 검색하느라 한참을 책을 펼치지 못했다. 책을 읽다가 호기심이 생기면 검색하고, 책을 꺼내오고, 없으면 주문하느라 정작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더뎌지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도 책을 만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즐겁다. 유년시절에 내 마음을 사로잡을 성장소설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인지, 어른이 되어 하나씩 읽으면서 마음이 풋풋해짐을 느끼지만 유독『빨강 머리 앤』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러다 저자가 오랫동안 이 소설을 마음속에 간직하다 배경이 된 캐나다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품은 이야기들은 뭔지 새삼 궁금해졌다.

저자가 거닌 소설의 흔적을 좇으면서 자신의 삶을 소설 속에 투영시키고 이루지 못한 꿈을 집어넣었던 앤의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키다리 아저씨』는 저자의 삶이 더 흥미로웠다. 1907년에 일본을 여행한 작가였고, 비밀스런 사랑을 한 사실과 소설 속에 녹아든 대학의 배경을 사진으로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이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이야기들. 어쩌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을 그들의 삶이 소설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독서 유무에 상관없이 나 역시 책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만나고 있음에도 현실 버전 같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아가고, 작가의 흔적을 만나며 이곳에서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만나는 평범한 배경들도 뭔가 특별해 보였다.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작가의 일이라면 수많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업현장을 만끽한 기분이었다. 너무 현실로 다가와 환상이 깨지기 보다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탄생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꽉 찬 느낌이다가도 한정된 공간 속에서 불안과 공포로 일기를 써 내려간 안네의 이야기는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삶이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 안의 재료는 너무도 다양하고 생경해서 문학으로 인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느 쪽인지를 아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란 확실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갖고 타인과 비교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122쪽)

행복을 정의하는 게 꼭 의미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가치관을 또렷하게 갖고 싶었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는 쉽게 타인에 의해 감정이 상하고 혼자 상처받기 일쑤인데 자신의 가치관을 가진 채 삶을 살아가고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작품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뒤로한 채 내가 작품이나 작가의 흔적을 좇아서 간다면 어딜 가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역시나 첫 번째는 도스토옙스키였고 러시아였다. 소설 속에서 만난 지명중에서 그냥 가보고 싶은 곳은 지브롤터 해협, 텔아비브, 파타고니아 등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장소는 늘어날 것이고 직접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문학과 만나는 즐거움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다도는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는 마성의 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