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CD장에서 음반을 꺼내왔다. 지금 가장 듣고 싶은 쇼팽 녹턴 2번을 틀고 나니 그제야 이 책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아노 조율사에 관한 생소한 소설을 마주하면서 글로도 음악이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음악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오랜만에 듣고 싶은 클래식 음반을 꺼내왔고 이 소설 덕에 음악이 좀 다르게 들리는 것을 알자 괜히 웃음이 났다. 음악에 대해 잘 안다거나 감정이 풍부하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능력 없이 내 귀에 감기는 대로 음악을 들어왔는데 피아노 안의 숲을 경험한 탓인지 그 숲속에 온 것처럼 건반들이 춤을 추는 모습이 눈에 선해 그냥 아름다웠다.
의무교육을 마친 아이들은 모두 산을 떠난다. 산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숙명이다. (18쪽)
소설의 초반에는 이런 문장을 마주하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였다. 산에서 자란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시나 두메산골에서 자라 중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왔던 내 자신이 생각났다. 어렸을 땐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이 너무 답답해서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갇혀 있는 기분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아 산이 주는 편안함과 시골의 고요를 만끽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기를 쓰고 도시로 나가본 뒤에 알게 되었다. 산이 방패막이 되어주지 않는 삭막한 곳에서는 늘 불안하고, 우울하고, 자신 없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고향과 가까운 소도시는 그럭저럭 적응했지만 대도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고향 근처로 돌아온 나는 어느 때보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무도 산도 계절도 그대로 붙잡아둘 수 없고 내가 그 안에 끼어들 수도 없다. 그래도 그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음을 알았다. (26~27쪽)
버스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집으로 가는 길을 걷다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금방 이해하게 된다. 그 안에서 나는 굉장히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도 말이다. 아무리 싱그러운 자연속이라도 낯선 곳보다 익숙한 곳에서 이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 다는 것도 말이다. 도무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관에서 피아노 조율하는 모습과 소리를 듣고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피아노와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길임을 깨달았다. 산에서 자란 탓에, 산이 품어주는 기질을 닮아 욕심도 집착도 없던 도무라가 피아노 소리에 매료되어 조율사가 되기로 다짐한 사건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피아노라는 세계에 들어갈 생각도, 끼어들 수도 없었던 도무라가 반복해서 아름답다고 말하게 된 것이 비단 피아노뿐만이 아님을, 마음가짐에 따라 본질이 어떻게 변형되고 달리 보이는 길을 열일곱 살에 발견한 것이다.
소설을 읽다 문득 피아노 조율하는 모습을 딱 한번 지켜본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십년도 더 전에, 형부가 조카들이 연주할 연습용 피아노를 구입했는데 다들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조율사를 맞이해야 했다. 조율에 대한 지식도, 조율사에 대한 정보도 없던 때라 덩치 큰 아저씨가 방문한 것부터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조율하는 분들은 모두 피아노를 다 잘 치는 줄 알았기에 그저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시간이 좀 걸렸다는 것과(다행히 나는 곁에서 지켜보지 않고 다른 방에서 책을 봤던 것 같다) 조율하는 도구들이 굉장히 투박했다는 것만 희미하게 기억날 뿐 소리가 어땠는지 그런 것들은 기억이 없다.
20대 초반에 바이엘까지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악보도 보지 못하고 얼마 전에는 교재마저 싹 버려버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피아노 연주법이든 조율이든 뭔가를 배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적어도 피아노 음악이라도 들어야 세상에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이 세상에는 피아노와 조율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었고, 피아노라는 숲으로 독자를 완전히 빨려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섬세한 문체도 그렇지만 도무라가 조율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숲을 점점 넓혀 가는 모습과 뛰어나진 않지만 묵묵하고 끈기 있게 조율을 하면서 조금씩 그 세계에 매료되어 한 단계씩 나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자신의 삶을 바꿔준 이타도리 씨의 조율과 쌍둥이들의 피아노와 그 중 언니 가즈네의 연주에 매료되어 묘사하는 부분은 그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즈네를 보면서 조율에 대한 꿈이 서서히 생기고 기꺼이 피아노 숲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에 나 역시 용기를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다음 이야기가 나와 주었으면 좋겠단 마음이 간절했다. 가즈네의 피아노가 더 아름다워지는 걸 보고 싶었고, 가즈네의 연주에 날개를 달아줄 도무라의 조율을 지켜보고 싶었다. 특별한 세계를 잔잔하게 그려냈지만 몇몇이 즐길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닌 누구에게나 부여가 가능한 내면과 삶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도무라처럼 그렇게 인생을 바꿀만한 것이 없었다는 열등감과 질투가 전혀 생기질 않았다. 뭔가 해보고 싶다면 소설 속의 대화처럼 1만 시간을 투자해보지 뭐, 하는 그런 가벼운 생각이 드는 걸 보고 놀랄 뿐이었다. 피아노의 내부를 소설의 제목처럼 ‘양과 강철의 숲’으로 부르는 것도 멋지고, ‘숲’을 통해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내 안에도 일렁이는 것 같아 산뜻한 기분이 나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