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이 나의 우주는 아니다.

by 안녕반짝
P20161111_125822480_F5B2DBED-46D6-4296-B078-AB33E9482226.jpg


문득 눈앞에 없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혹은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각날 때,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닿는 곳. 멍하니 짚이지 않는 허공에 마음의 전부를 세워놓을 때, 그리움은 거기에 있다. 오백만 년 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득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까? 나는 우주가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다. (48쪽)


이 문장을 마주하고는 깊이 공감해서 역시나 ‘아득히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주하는 건 천장의 벽지 무늬뿐이었지만 이 그리움이 우주로 퍼져나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마치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잘 지내냐는 읊조림이 외롭지 않았던 건 이 문장에 힘입어서라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 덜 쓸쓸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정작 우리가 행하는 가장 크고 위대한 기적은, 기어이 우리가 미치지 않고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거칠고 메마르고 버려진 세계 속에도 삶이 존재한다는 불가사의로서의 기적 말이다. (27쪽)


육아가 너무 힘들 때가 있었다. 아이가 둘이 되고 한꺼번에 아파서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짜증을 엄청 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은 왜 이리 고단한지 회의감이 들어 내가 선택하고 지탱해 온 삶임에도 후회와 번민이 가득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심하게 징징댄 것뿐이라고, 그것도 하나의 과정을 지나온 것뿐이라고 부끄러운 마음 가득이지만 정말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요즘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앞으로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새로운 고민들이 날 힘들게 할지라도, 닥치지도 않는 미래를 고단하다 생각하지 말고 현재의 기쁨을 만끽하기로 다짐하자 아이들과 함께 존재하는 게 기적 같았다.


끝나고 나서야 사랑은 시작된다. 아니, 끝나기 위해서 사랑은 시작되거나 사랑은 그 끝을 통해서 완성된다. 그러나 그 핑계를 방패 삼아 우리는 사랑을 버리고 다만 하나의 추억을 얻고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35쪽)


사랑해서 한 결혼임에도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이 끝이 아닐까란 생각을 자주 했다. 연애할 때와 너무 다른 모습에(남편도, 나도) 자주 다투고, 삶의 방식과 생각이 달라 막막해할 때 이건 사랑이 아니라 고난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이제야말로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끝나고 나서야’ 시작되는 사랑처럼 서로가 맞지 않는다고 도움 안 되는 후회를 하기보다 끝을 봐버렸으니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나간 사랑을 방패 삼지 않고, 추억하지 않고, 소장하지 말고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자고 말이다.


당신의 말이 나의 우주는 아니다. 다만 나에게 당신의 말이 우주의 무게를 갖고 있을 뿐이다. (154쪽)


한때는 짝사랑했던 이의 말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들이 나의 우주가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주의 무게’를 갖기보다 내 말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또한 책에서 만난 문장들이 때론 나에게 우주의 문장의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저자의 말을, 그가 쏟아낸 모든 말들이 우주의 문장이 되기보다 녹아들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세상을 달리 보는 시선과 마음가짐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과연 악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