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운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이 된다. (205쪽)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삐뚤어짐이었으며, 어떠한 기대도 져버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지탱하던 희망이라고 말하기는 뭣한 기대의 끈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단 하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 있었다면 미조구치가 금각사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는 계획이 변경되어 ‘담배 한 모금 피우’면서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는 것뿐이었다. 미화로 남겨 두어도 될 이야기들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서 오직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 것 같던 그가 왜 계획을 변경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단순하게 담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쓰루카와의 순수한 성분이 그를 단명하게 했으니 ‘나에게는 그것과 반대로, 저주받을 장수가 약속되어 있는듯이 여겨졌(136쪽)’다는 스스로의 예언 때문인지도.
이전에 금각의 정원에서 창녀를 밟은 이후로, 또한 쓰루카와가 급사한 이후로, 내 마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과연 악은 가능할까?’ (169쪽)
미조구치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만큼 내면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게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소설이 조금 달리 보였다. 유독 초반이 읽히지 않아 책을 펼쳤다 닫았다 반복하면서 미조구치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다는 궁금증도 일지 않았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고 그 실체는 미조구치 안에 들어 있은 어둠, 훗날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사기와기의 자극들, 쓰루카와의 죽음을 통해 차곡차곡 쌓여갔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아픈 아버지와 사랑으로 기억되지 않는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없었더라도, 그때부터 미조구치의 내면에 악한 것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더듬이에 가난하고, 나중에 아버지처럼 스님이 되어야 하는 길이 정해져 있었지만 모든 것이 피폐했다. 전쟁 중인 나라의 혼란과 시대의 암울함이 있었더라도 어둠으로, 불행으로 침잠해가는 미조구치가 내내 불안하고 불쾌했다.
아버지가 죽기 전 함께 본 금각사의 아름다움이, 정작 그곳에 머물면서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만 해도 그가 맞이하게 될 앞으로의 일들이 그의 뜻처럼 되지 않았을 거라 짐작하지 못했다. 패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런저런 읽을 겪으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생활과 행동으로 악을 맛본다면, 나는 내계의 악에 가능한 깊숙이 가라앉아 버려야지(74쪽)’ 하고 다짐할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악한 본성을 깊숙이 눌러버린다고만 생각했다. 대학에서 만난 안짱다리 사기와기의 미美에 대한 독설과 철학적이지만 온통 가시투성이인 그의 내면과 언행들은 미조구치를 자꾸 자극 시키는 것 같았다. 내면의 악함을 숨기지 말라고, 모든 것은 허무하니 그냥 드러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소설 초반에 드러나는 우이코의 죽음, 한 남녀의 모습, 어머니의 불륜 목격, 금각사에 미군과 함께 온 여자의 배를 밟았던 일 등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더라도 그의 시선으로 들려지는 이야기들은 다 괴이해보였다. 시절이 그러했기에 라고 해도 기이한 감정들이 점철된 이야기들이 훗날 더 처참하게 깨지는 것을 보며 미조구치가 바라 본 시선은 뭔가에 가로막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찻잔에 젖을 짜주던 여인을 직접 만나고 그녀가 사기와기에게 버림받고 그녀를 비롯한 하숙집 딸과 관계를 맺으려 할 때마다 금각이 나타나는 환영. 망신만 당했던 우이코와의 일들이 죽음으로 미화되어 늘 자신에게 ‘이중의 세계를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었던 듯’ 여겨지는 것. 그 모든 과정이 금각사에 대한 미묘한 뒤틀림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삐뚤어지고 삐뚤어져서 불까지 지르는 행위에 도달하기 위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을 제지해주기 위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기보다 금각사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랐다. 어차피 그 일을 하기 위한 생각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의 내면에 있는 악함이 꿈틀거렸는지도 모르겠으나 계기를 만들고 실행해 버린 미조구치를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금각사의 아름다움도, 실행하기 전에 바라본 황홀한 금각사도 그에겐 불타고 없어져야 할 악, 자신,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 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실제 인물을 연구한 자료와 미조구치를 비교하면 오싹한 기분까지 든다. 소멸에 대해 이토록 잔인하게 그려내야만 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새도 없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이 모든 걸 환청처럼 느끼고 싶다는 생각. 미조구치가 바라 본 내면의 환멸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멀리 멀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싶었다. 회피라고,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내면의 악함이 내게 오는 것을 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