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그런 사랑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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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덮고 나면 혼잣말로 책에 대한 한줄평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불쌍한 개츠비네.’ 한마디를 내뱉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오래전에 하루키 소설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찾아서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던 이야기가 생생히 살아나는 것을 보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개츠비를 어째야 할지 몰랐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개츠비를 말이다. 닉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았을 것 같은 개츠비를 떠올리니 가슴이 아파온다.


개츠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이 여성은, 실은 그런 사랑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이 책을 번역한 김영하 작가의 말은 개츠비의 사랑과 헌신, 그간 자신이 쌓아왔던 믿음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개츠비에게 사랑한단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가 버린, 그의 죽음 앞에 어떠한 애도도 하지 않았던 데이지를 일부러라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리면 개츠비에게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남편이 공공연하게 외도를 하고 있음에도 모른 척, 그 집을 뛰쳐나오지 않았던 그녀를 보면서 개츠비에게 돌아갈 용기라곤 없을 거라 생각했으면서도 개츠비의 죽음을 자초한 그녀를 절대 곱게 볼 수 없었다.

화자인 닉을 제외하곤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상하게 느껴졌다.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묵혀뒀던 이유는 인물들이 둥둥 뜨는 듯한 기분과 소설의 배경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더군다나 그들의 행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으니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러다 닉의 옆집에 살고 있는 개츠비가 등장하고, 데이지와의 인연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는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읽기를 멈추면 이들의 이야기가 사라져버릴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일부러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속도가 붙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개츠비가 자택에서 주말마다 화려하게 파티를 열었던 화려한 불빛 속으로, 아니면 공허하고 쓸쓸한 그의 눈빛 속으로 휘말려 들 것 같아 어서 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톰과 데이지는 경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물과 살아 있는 것들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그런 다음에는 돈으로, 혹은 더 무지막지한 경솔함으로, 혹은 그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는 그 무언가로 보상했다. 그런 후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말끔히 치우게 했다. (222쪽)

이 이야기의 끝에서 바라 본 건 경솔한 사람들의 무책임함이었다. 개츠비의 쓸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은 향하는 곳이 없었으며, 데이지 앞에 성공해서 나타나면 다시 돌아와 줄 것이라는 신념은 오직 개츠비 만의 착각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시절에 알게 된 데이지라는 상류사회의 아름다운 그녀를 갖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츠비가 맞이한 건 비극이었다.

‘데이지는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고 개츠비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김영하 작가의 말을 곰곰 생각해보니 그들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 같다. 서로 다른 이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비극을 낳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225쪽)’라는 말은 비단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과거 속에 밀려가던 그들이 보여준 ‘앞’은 밝진 않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나아감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그들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라도 앞으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츠비를 애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이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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