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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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36살의 생일 날, 36살에 생을 마감한 한 의사의 이야기를 꺼내들었을까. 정말 우연히 펼친 것뿐인데 다 읽을 때까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첫 눈물은 저자가 산부인과에서 실습을 할 때 23주에 태어난 쌍둥이 아기들이 인큐베이터에 있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나의 두 아이 모두 위급한 상태에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입원한 경험이 있어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졌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처음 아이들을 대면했던 그 순간. 남편과 함께 그 아이들을 보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똑 하고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두 번째 눈물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부분이었다. 아기를 낳기로 계획함과 동시에 헤어짐을 생각해야 함에도 ‘그렇다 해도 아기는 멋진 선물이 아니겠어?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며 그들에게 다가 올 아기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미완성이지만 이 회고록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딸에게 남긴 메시지 부분에서, 남편의 죽음을 담담히 기록하고 이 책의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야기 하는 아내 루시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면서 읽었다. 내가 눈물이 많아진 건지, 습관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가족에 관한 부분만 나오면 쉽게 울어버리는 나를 보며 소중한 것이 생길수록 두려움도 커지고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음을 인정해야했다.


내게 삶의 시간이 얼마 허락되지 않다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눈물을 훔쳐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도대체 나는 어떡해야 할까? 내 아이들을 안을 수 없고 커 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데 저자는 슬프고 절망스럽지만 담담하게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고,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절망적인 받아들임이 아니다. 의사가 아닌 환자의 상황에 놓였음에도, 곧 다가올 죽음을 통해 신경외과 의사로서의 자기반성은 물론 언젠가 모두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막연한 두려움까지 덜어 내주고자 했다. 레지던트 마치기 직전이었고, 수많은 곳에서 보내오는 러브콜, 곧 태어날 아이가 있는 미래가 촉망되는 실력 있는 신경외과 의사인 그가 말이다.

이 길은, (중략)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64쪽)

출세와 돈, 권위가 아닌 이런 이유로 영문학도에서 의사의 길로 전향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실력까지 겸비한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너무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안타까움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까지 제쳐두고, 이런 고민들이 내면에 쌓여 의사로서 환자에게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자신에게 1년이 남아 있다면 글을 쓸 것이고, 10년이 남아있다면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를 치료하겠다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는 어떤 시간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투병 중에도 불가능 할 것 같았던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끝까지 마무리했고 이 글까지 썼다. 도저히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오히려 죽음이 앞에 있었기에 더 초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처연하고, 담담하고, 문학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순수하게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이 주는 의미를 나름대로 명확하게 갖고 있는 그가 의사로서 바라 본 삶과 죽음은 또렷했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다가 올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의 글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의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몇 번이나 멈춰서 같은 문장을 곱씹었다. 그가 삶에서, 문학에서,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죽음 앞에서 깨달은 의미들은 죽음을 무작정 두려워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죽음이 결코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고 말이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아내나, 죽음을 앞둔 가운데 이런 글을 남긴 남편, 존재만으로도 아빠의 희망이 되었던 어린 딸. 그들이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치 내 일처럼 마음 아프지만, 그가 남긴 건 슬픔이 아니다. 언제 이런 알 수 없는 일이 닥칠지 모르니 현재를 즐기라는 충고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려움의 영역이 아님을 자신의 경험으로 그저 보여준 것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못 보게 돌까봐, 너무 일찍 죽게 될까봐, 고통스럽게 죽게 될까봐 죽음이 두렵다. 하지만 내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도 끝난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내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에 휘둘려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할 어리석음을 걷어내고 살아 있는 나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건 굉장한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일이다.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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