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초 만에 사랑, 상실, 후회의 감정을 모두 맛보았다.

by 안녕반짝
P20171105_171718681_C8E9497E-A7D1-48F2-B17B-86DCB59F52FE.jpg


결혼을 하고 나니 편한 것 중 하나는 그거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힐끗거리지 않고 신경을 꺼버리는 것. 평생을 사랑하기로 약속한 남자가 있고, 그 사이에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결혼 전에 받았던 강박관념(끊임없이 이성을 탐색하는)이 완전 사라져 버렸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말 한 마디 걸지 못한 소심한 성격임에도 내면에 이성에 관한 관심이 꽤 많아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잘 감지했다. 하지만 그것 뿐, 다가가거나 관심을 끌거나 밀당을 하는 방법들은 전혀 몰랐다. 심지어 내가 관심이 없는 사람이 날 좋아해도 몰랐다. 그야말로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에 한해 호감의 레이더가 움직였다는 얘긴데 결혼을 하니 그런 피로함을 싹 잊고 살았다. 그게 너무 편했다.


저자가 ‘놓친 인연’에 영감을 얻어 검색하고 첫 번째 사연을 읽었을 때 ‘불과 8초 만에 나는 사랑, 상실, 후회의 감정을 모두 맛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결혼 전에 내 스타일에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도 그 짧은 시간에 그 모든 걸 다 느껴봤으니까. 그때부터 이 책을 읽는 게 행복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놓쳐버린 인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저자는 그 사연을 읽으면서 “관음증, 대리 로맨스, 불안한 마음, 이미지들. ‘놓친 인연’의 메시지들을 모으면서 그곳 독자들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분명 감정이입이 과하게 들어가 과거에 내가 놓쳐버렸던 인연을 생각하며 끙끙 앓게 되리라 짐작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감정에 굉장히 약해서 로맨스 드라마를 일부러 안 볼 정도니까.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와 사연을 읽으면서 생겨난 감정의 변화를 보면서 나 또한 ‘관객’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영감을 받으러 메시지를 읽으러 간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사람들의 그런 풋풋한 마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짤막한 글과 함께 실린 일러스트는 상상을 더 풍요롭게 해주었고 때론 일러스트만 보고 있어도 내 안에 감성이 퐁퐁 솟아나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더해져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전에 비행기 안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를 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치과 진료를 위해 아침 비행기를 탔다 오후 비행기로 돌아왔는데 내려오는 비행기의 좌석에 앉자마자 창가의 낯선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침에도 내가 자기 옆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아침에 본 여자아줌마가 또 앉아서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겠지만 세상이 너무 흉흉해서 낯선 남자가 말을 거는 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 남자는 내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 자동차 안에서 다시 말을 걸었다. 집이 어디냐고,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속으로는 무서웠으면서 잘 가라는 인사까지 했다. 싱글일 때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당황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오버한 것 같아 계면쩍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대입해 보는 것, 그리고 내가 놓친 인연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님을 깨닫자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의 소소한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비단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결혼 5년이 넘은 나 같은 아줌마라도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상상이 19금으로 가지만 않는다면)이 외도는 아니지 않는가? 외도인가? 내가 너무 나가는 건가? 잠시나마 추억 속의 설렘을 들여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