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를 가르는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들린다.

by 안녕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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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귓가에 에베레스트를 가르는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상당한 지면을 채운 산의 모습 위에 덧입혀진 바람 소리가 진짜 들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내가 둥실 떠서 그 모든 걸 지켜본 것 같았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는 이유도 없이, 정말 산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가운데 꼭 산을 올라야만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그를 비롯한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조금은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이해는 쉽지 않다. 어떤 것에도,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도 타인을 빗대어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알기에 인정이라도 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인정이라는 것이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며 산을 올랐으니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그냥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만화의 시작을 알리는 1924년 6월, 맬러리와 어빈의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수수께끼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는지 모른다. 그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증언과 1999년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이 만화는 어떻게 결말을 이끌어 냈을지 궁금했다(저자는 오히려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이 소설을 완성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그린 만화이므로 원작 소설과 달리 결말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이 폭발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에베레스트, 맬러리,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들 등등 그야말로 관련된 모든 것을 검색하고 또 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준비하는 사람 같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에베레스트에 등정하기 위해선 엄청난 입장료와 준비 비용이 든다는 걸 알고 더 오를 일이 없겠다며, 지켜보는 것만 하자고 다짐하긴 했지만 말이다.


맬러리가 등정 당시에 지닌 카메라로 추측되는 물건을 카트만두의 등상용품점에서 발견한 사진작가이자 등산가인 마코토로 인해 초등정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산에 오르기 위해 태어나고 무모할 정도로 산에 모든 걸 바친 하부 조지라는 등산가를 통해 산은 물론 에베레스트의 은밀한 부분을 모두 보여준다. 최초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하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경로를 등반할 계획을 세운다. 최초의 의미와 그 계획의 무모함이 하부라는 사내를 옭죄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때도 많았다. 그냥 오르면 안 되는 것일까? 신의 영역이라는 에베레스트에 오르면서 그것만으로 의미를 두면 안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올랐다는 이유로 이유를 박멸해 버리는 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자신의 일생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산에 오를 때에 살아있고, 땅에 내려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을 때의 그 생기 없음을 봐버린 터라 나 역시 하부를 따라 그렇게 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최초를 달성할 기회는 분명 있었다. 등산에 재능도 있고 묵묵히 산에 오를 준비를 하는 그임에도 자신의 세계가 너무 강해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 기회를 날려 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들이 가지 않은 경로와 방법을 통해 단독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추락해 비바크를 하면서 오로지 죽지 않기 위해 남긴 수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산에 대한 그의 진지한 마음,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고독과 추위에 맞서면서 바라 본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가슴 시릴 정도였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도 또 오르려는 그를 보고 있으면 그에게 산이 전부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함께 오르다 추락사한 동료를 항상 마음에 품고 죽음 직전에 환영을 보면서도 자신이 산에 오르는 걸 포기할 때 데려가라는 그를 보면서 이건 정말 무모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부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무산소 단독으로 3박 4일 만에 오른다는 계획은 차마 동조할 수 없었다. 성공여부를 떠나 하부는 그 일을 꼭 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불안한 마음으로 좇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꼭 성공해야한다는 기대감도, 맬러리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는 극적인 결말도 필요 없이 하부라는 남자와 에베레스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만화의 의미는 충분했다. 죽으면 쓰레기일 뿐이라는 남자, 달아나지 못하게 자신을 찍도록 마코토에게 동반을 허락한 남자. 그럼에도 그를 기억해야 하는 건, 그가 평생을 걸쳐 최초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걸 포기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목숨을 걸고 함께 올라간 몇몇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사실이다. 오로지 혼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경로를 오르는 것에만 의미 있는 것처럼 말하던 그가, 산에서는 인간미를 버리지 않는 모습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완벽한 등정이라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하부가 돌아오지 않은 에베레스트에 마코토 역시 꼭 올라야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네팔로의 등반은 금지당해 티베트 쪽으로 오른다. 이 등반이 무모했음을,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하부를 발견하고, 그가 왜 그곳에 있어야만 했는지를 깨닫게 되자 나 또한 그제야 하부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있을 곳은 결국 에베레스트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부가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맬러리의 필름 말이다)은 맬러리가 정상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건 이 만화를 읽은 목적은 아니었다. 물론 정상을 오른 것도 중요하지만(이 사실을 무시하면 목숨 걸고 오른 사람들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들이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모습을 지켜봤고 그 힘들고도 행복한 고행 속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산이 두려웠다면 절대 그런 행위는 할 수 없었을 테니까.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춥고, 산소도 부족하고, 고독하고, 온 몸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적인 체력소모가 심했지만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인간의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산들, 그리고 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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