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은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라고 시작된다. 이어지는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을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롤리타'를 천천히 발음하면서 정말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리는지 확인해 보았다. 정말 그렇다는 신기함도 잠시,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라는 문장 앞에서 '슬슬 시작되는구나!'라며 마음을 다잡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서문에서도 '이 책이 진지한 독자들에게 안겨줄 윤리적 충격'이라는 구절 때문에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온전히 만난 뒤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서로 부딪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읽다』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을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나 만만치 않은 소설이었고 초반부터 무너져 내렸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읽었음에도 험버트의 내면에 드러난, 스스로 '님펫'이라 칭하고 어린 여자 애들에게 더욱 욕망을 느끼고 그런 소녀를 알아보는 그의 시선이 싫었다. 롤리타를 한눈에 님펫으로 알아보고 전혀 그 집에 하숙을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눌러앉은 그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험버트에게 호감을 갖고 롤리타를 자꾸 떼어놓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하는 샬럿(롤리타 엄마)의 시선을 피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샬럿은 험버트를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하면 남고, 사랑하지 않으면 당장 떠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험버트가 롤리타를 두고 떠날 리가 없다. 험버트는 결혼까지 하면서 롤리타 곁에 있으려 하지만 샬럿은 자신과 잘 맞지 않는 롤리타를 바로 기숙학교로 보내고 험버트와 신혼생활을 즐기려고 한다.
오직 롤리타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 결혼까지 감행한 험버트가 쏟아내는 생각들은 가관이다. 그의 생각을 읽다 불쾌하다 못해 정신병이 아닐까? 혹은 망상이 아닐까? 아니면 정말 타락하기로 다짐하고, 온갖 나쁜 짓을 해보기로하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더러운 욕망을 저자는 험버트를 통해 용기 있게 꺼내놓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운명은 험버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롤리타에 대한 욕망을 모두 안 샬럿이 편지를 붙이러 가다 사고를 당해 죽고 험버트는 혼자 남겨진 롤리타를 데리고 떠난다.
롤리타를 향한 욕망을 드러내는 험버트는 인간 이하였지만 아름다운 말로 롤리타를 찬양하고 가끔 진심을 진지하게 드러낼 때면 도대체 당신이란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보여 달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유를 제쳐두고라도 험버트와 롤리타가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고 해도 둘을 응원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롤리타는 타락해 갔다. 모텔을 전전하며, 험버트의 욕구를 채워주며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12살 아이가 타락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험버트를 사랑한다는 전제하에 타락하지 않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험버트의 욕구를 채워주고 대가를 바라는 부분에서는 맥이 빠지고 말았다. 적어도 두 사람이 나이와 육체적인 관계를 떠나 정말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힘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태기를 맞은 연인이 그러하듯, 결혼에 대한 환상에서 빠져나온 부부가 그러하듯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험버트도 뒤에 후회했듯이 롤리타의 영혼에 대해 제대로 된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 자신,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그랬으니 그들은 다른 연인들처럼 싸우고, 치사하게 굴기도 하고, 그게 넘쳐 집착이 되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게 힘들건 당연했다.
험버트가 그 모든 아슬아슬함을 물리치고(?) 얻어낸 롤리타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또한 롤리타도 험버트를 호기심이 아닌 조금이나마 좋아하길 바랐다. 롤리타가 험버트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건 정말 착각이었나 보다. 조금씩 어긋나고 험버트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 눈치를 챘지만 훗날 도망친 롤리타와 재회해서 험버트가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롤리타는 험버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아저씨는 내 인생에 상처를 남겼을 뿐이고 (449쪽)
롤리타의 이 말은 험버트에 관한 잔인한 표현일지 몰라도 사실이었기에 그에게서 도망친 게 당연해 보였다. 적어도 롤리타에겐 험버트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볼 기회도 있어야 하니까. 반면 험버트는 점점 정신이 흐려지고 광기어린 사내가 되어갔다. 종종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로 의식이 흐려질 땐, 불행한 앞날이 그를 가로막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불안감은 롤리타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로 옮겨갔고, 그럼에도 그 모든 비극 앞에 험버트가 불쌍하단 생각도, 롤리타가 참 못됐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험버트가 첫 남자가 아닐 정도로 성에 호기심이 많았던 롤리타였는데도 말이다).
이 소설을 덮은 뒤에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정신병자의 이야기를 왜 읽고 있었을까?'였다. 험버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험버트와 나와의 만남은 사랑보다 광기가 더 짙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그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자업자득'이었다. 뿌린 대로 거뒀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테고, 혼자 남겨진 롤리타를 취하지 않을 만큼 욕망을 짓누를 수도 없었을 테니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롤리타 또한 어른의 통제가 잘 통하지 않은 독립적인 아이었고 성에 관해, 세상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아이였던 만큼 험버트의 외로운 사랑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설을 덮고 나서 실망스런 마음이 가득했다. 롤리타에 대한 험버트의 사랑을 기대했지만(그는 내내 롤리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내가 외면해 버린 걸까? 왜 나는 '오직' 사랑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름다운 문장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문학적인 느낌 보다 광기 어린 섬뜩함이 더 짙어 소설의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당장의 내 느낌은 이러해서 어쩔 수 없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나보코프가 독자들의 불쾌감을 두려워하는 작가였다면 이런 소설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험버트를 빌려 저자 자신을 녹여낸 소설이라는 말을 그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읽을,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신경 쓰기보다는 죽기 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롤리타의 모든 것을 생생히 그려내는 게 목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이야기를 모두 쏟아내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었을 한 남자. 스스로 정해 놓은 님펫에 대한 욕망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결국은 그 욕망에 대한 대가가 이것이라고 말이다. 죽기 직전에 감옥에서 쓴 롤리타에 대한 모든,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험버트가 짠하다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지만 롤리타와 험버트의 불행한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잠깐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것으로도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험버트는 당연히 롤리타가 되겠지만 롤리타는 꼭 험버트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인생이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만으로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인생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정말 별거 아닌 게 행복인데 그 단순한 사실을 몰라(이건 나도 해당 되는 것 같다) 이렇게 과격한 방법을 취한 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감히 장담하건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각자 다른 롤리타, 각자 다른 험버트를 만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시샘한다.
옮긴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빌려보자면, 우리가 만난 롤리타와 험버트는 역시나 각자 다른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다보니 이 소설이 내게 남긴 건 무엇인가, 이 소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설이 내게 불쑥 다가오면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강하지만 험버트와 롤리타의 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것만으로도 어려운 숙제를 해낸 셈이므로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