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시간에 집 근처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음악과 함께 읽을 때 시너지가 발생하는 책. 마음에 약간의 들뜸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들뜸이 책의 감수성을 모두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오로지 이 책을 읽기 위해 주변 환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점점 더 차가워지는 커피, 귓속에 울리는 음악, 한가한 카페안의 작은 소음, 두 아이의 엄마, 아내, 아줌마라는 사실을 잊고 커리어 우먼이라도 된 것처럼 다리를 한껏 꼬고 앉아 책을 읽었던 시간이 지금은 좀 쑥스럽지만 여전히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내용의 궁금증 때문에 정신없이 책장을 넘길 때는 있어도 다음 장에 뭐가 나올지 몰라 설렜던 적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런 설렘과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고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나를 옆에 앉은 사람이 봤다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시선조차 신경 쓰이지 않을 즐거움이 좋았다.
세상에는 몇 가지 편견이 있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편견, 코미디언은 집에서도 웃길 것이라는 편견, 철수와 영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닐 것이라는 편견, (91쪽)
이런 편견과 심각하게 마주하고 있는데 바로 옆 페이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철수와 영희가 떡하니 그려져 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봤던 미지의 인물인 철수와 영희가 늙을 거란 상상을 해봤어도 구체적인 모습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저자는 여지없이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 뿐만 아니라 편견을 확 깨고 있었다.
“사랑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는 ‘현재’다.” 이런 구절 앞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못한 나를 반성하기도 하고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 상상 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에 대한 동경'인 '일탈'을 꿈꾸면서도 늙어버린 철수와 영희처럼 때론 구체적인 드러남이 나를 즐겁게 해주곤 했다.
“100퍼센트 준비되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은 “영원히 시작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런 구절은 어떤가? 뜨끔 하는 것들이 쉴 새 없이 마음에서 올라오는데도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두근거림이 고마웠다. 해외소설을, 그것도 단단한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이런 생각의 전환과 여유를 주는 책은 더 단단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힘 혹은 현재의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 책을 읽었을 상황을 떠올리며 행복한 기억을 나누는 것. 그것이 이 책을 향한 나의 고마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