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를 얽매고 있는 이 거짓을 깨부수고

by 안녕반짝
P20171217_194036550_7FDE5359-4046-4CD7-A50E-A6E37EFEF7C5.jpg


그간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 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많이 만나보지 않았으면서, 개인적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풍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색해 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부활』1권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잘 읽히는 소설인 줄 몰랐고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무엇보다 주인공 카츄사와 귀족 네흘류도프의 심리 변화가 흥미로웠다.


환희에 찬 마음으로 신이 창조한 이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애썼던 그는 이제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뻔하다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속한 삶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77쪽

고모 집에서 카츄사를 처음 만났던 네흘류도프를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도덕적 명분을 위한 희생에서 높은 정신적 만족을 느끼는 부류였던 네흘류도프는, 토지의 사적 소유가 얼마나 가혹하고 불공평한 제도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물려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모두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에 관한 논문을 쓰던 중 고모 집에 들렀다 카츄사를 만났다. 집시의 사생아로 태어난 카츄사는 죽을 뻔 했지만 고모들이 대모가 되어 주어 목숨을 건졌고 장성해서는 고모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렇게 순수했던 네흘류도프와 카츄사는 만남이 거듭될수록 서로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수했다. 그러나 네흘류도프가 군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일명 타락의 물이 들면서 카추샤를 범하고, 결혼을 거의 약속한 여인이 있음에도 유부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이제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동물적 자아를 자신의 ‘나’로 간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끔찍한 밤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선善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선을 믿었고 또 사람들 역시 그 선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밤 이후 그녀는 선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하느님과 선에 대해 말하는 건 오직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204쪽

네흘류도프가 그녀를 범한 밤이 카츄사에게는 ‘선善을 믿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만큼, 이후 그들의 만남도, 그 전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은 사라진 채 카츄사는 몸을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던 둘의 만남은 법정에서였다. 카츄사는 독살 살인 사건에 연류 되어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고 그녀의 재판이 일어나던 날, 네흘류도프는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카츄사는 네흘류도프를 생각하며 살지 않았기에 그를 전혀 못 알아보지만 단박에 카츄사를 알아본 네흘류도프는 내면의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타락해버린 그녀에 대한 놀라움과 그녀가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갈등하던 그는 결국 배심원으로서 중요한 실수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그러한 삶과 양심의 목소리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생겨났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야 그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은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를 얽매고 있는 이 거짓을 깨부수고 말리라.’ 다짐한다. 먼저는 카츄사에 대한 부당한 판결을 되돌리는 것이고, 참회할 수 있다면 그녀와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는 점점 자신의 세계에 갇혀 버린 듯했다. 카츄사는 그런 고백을 달가워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한 채, 그를 소소하게 이용할 뿐이다.

카츄사를 되돌리겠다는 명분으로 네흘류도프가 부와 지위를 이용해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들이 탐탁지 않은 가운데, 그는 형무소 안을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잔혹함과 부조리함’의 끔찍함을 목도한다. 카츄사를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를 향해 카츄사는 ‘당신은 날 이용해 구원받고 싶은 거야.’라며 독설을 쏟아낸다. 하지만 조금씩 네흘류도프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고 달라지려는 그녀의 모습이 비춰지면서 1권은 끝이 난다. 전혀 간극이 좁혀질 것 같지 않던 그들이 과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삶을 이어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누구든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선 그 행동이 중요하고 훌륭하다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든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고 훌륭한 일이라 생각하려 끊임없이 애쓰는 것이다. 234쪽

네흘류도프가 카츄사를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상, 수 많은 난관들을 어떻게 해쳐나가게 될까? 과연 네흘류도프의 생각이 타인에게도 ‘중요하고 훌륭하다 여’겨지는 일이 될까? 어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각자의 신념과 가치 사이에 따’라 행동하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