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
1. 별천지 두바이
부끄럽지만 바깥 구경 삼매경이었다. 스스로 촌놈 같아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디를 보든지 금빛으로 반짝이는 조명과 기하학적 모양의 빌딩들, 두바이의 야경(夜景)은 탄성을 자아냈다. 마치 미래의 어느 도시에 떨어진 것 같았다.
우린 자정이 다 되어 두바이 국제공항에 내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 건물이라고 한다. 덕분에 짐을 찾으러 공항 안을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덕분에 픽업 차량 기사와 만나기로 한 약속도 늦어버렸는데, 겨우 만난 그는 다행히도 친절했다.
밖으로 나오니 밤인데도 무더위가 느껴졌다. 몇 시간 전까지는 그리스에 있었다. 아테네는 슬슬 가을 찬 바람 불어오는 날씨였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중동의 사막 도시에 떨어지니 새삼 달랐다. 호텔에 들어와서도 창밖 구경은 계속되었다. 방 안은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지만, 객실 유리창만 손바닥으로 만져보아도 그 열기가 전달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두바이에서 가장 신혼여행답게 여행했다. 열심히 걷고 구경하고 배우는 일은 그리스에서 마무리했다. 두바이에서는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하지 않고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는 일만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세계 최대 쇼핑몰에서 여흥을 즐기다가 세계 최고 빌딩 아래서 식사할 수 있었다. 참으로 이 나라에는 세계 최대, 혹은 세계 최고가 많다.
두바이는 인공 도시였다. 물론 이상한 표현일 수도 있다. 모든 도시는 다 인간이 만든 것이긴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독 두바이는 그 인공성이 두드러졌다. 다른 도시에서 보이는 역사와 자연과의 맥락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1966년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 두바이는 작은 진주조개잡이 어촌 마을이었다. 운 좋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어 시기가 맞았다. 시작은 사막 한가운데 국제무역센터를 지은 것이었다. 아랍과 서구, 양쪽의 자본은 서로 만날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건물이 지어지고 지금의 두바이가 탄생했다.
나는 고도(古都) 애호가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새롭게 지어진 도시의 번쩍거리는 모습보다는 옛 유적이 남아있는 그런 거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두바이의 모습에는 웬일인지 매혹되었다. 어쩌면 차라리 그 과함이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두바이에는 수많은 랜드마크가 있지만, 최근에 개관한 도넛 모양으로 생긴 미래박물관이 있다. 어쩌면 미래박물관이란 개념이 두바이를 나타내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박물관은 흔히 찬란했던 과거를 전시하는 곳이다. 하지만 두바이에서는 그런 과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SF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를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미래 도시의 모습이 있다. <제5원소>의 미래 도시는 뉴욕을 참고했고, <블레이드 러너>는 도쿄나 홍콩을 모티브로 한 것 같다. 당대 최고 화려했던 도시들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바이에 와보니 어쩌면 앞으로의 SF영화에서 나타나는 도시에서는 이곳 두바이의 일면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흔히 말하는 최고층 빌딩 전망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부터 여행을 다니며 맞춘 취향이었다. 사실 어느 도시든 고층에서 본 모습은 엇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방문하는 부르즈 할리파나 두바이 프레임은 아래서 구경하는 데 만족했다. 하지만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전망대만은 놓칠 수가 없었다.
팜 주메이라는 야자수 모양으로 만든 인공 섬이다. 이들은 바다를 메워 호텔과 주택을 지었다. 처음에는 미분양이 걱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덕분에 후속 프로젝트들이 시작되어 덕분에 지금도 두바이 해안선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전망대에 들어서자 두바이 국왕이 팜 주메이라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이 나라 어디서든 국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서점에서는 국왕이 직접 썼다는 책들이 잔뜩 쌓여있기도 했다. 영상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나 어렸을 때 해안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걸 좋아하죠. 팜 주메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상에서는 팜 주메이라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발전하고 현실화하였는지 처음부터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최고 권력자에 대한 찬양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영상의 내용은 나에게도 퍽 인상적이었다.
이는 이 나라가 스스로 브랜딩 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두바이를 ‘창의성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창의성 그 자체가 유산이 되고 도시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만만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두바이를 가능케 하는 건 사실 결국 부동산 개발일 것이다. 자본이 필요한 곳은 전 세계에 널려있다. 왜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아랍 사막 한가운데여야 하는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도시는 기획의 승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 새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두바이를 매혹적으로 느낀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2. 해외여행이 필요한 이유
지금 쓰고 있는 <한 번뿐인 그리스 신혼여행기>의 첫 편 제목은 ‘결혼에 대하여’였다. 아무쪼록 신혼여행 기록이다. 그래서 마지막 제목은 ‘여행에 대하여’로 미리 맞춰 준비해두었다. 최초의 계획은 결혼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했던 글이 마지막에 가서 여행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지금 결국 글을 맺을 시점이 되었다. 그 원대한 계획이 이제는 부담스럽게 나를 짓누르고 있다. 신혼여행이 남들보다 비교적 짧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여행에 불과한데, 그동안 결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지 공포’라는 단어가 있다. 글쓰기 전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글을 빨리 써야만 하는 상황에서 책상에 앉아는 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깜빡이는 커서만 보고 있는 순간에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이번 편을 쓰면서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더구나 차라리 아테네가 여행의 마지막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면 철학도로서 기분을 내며 내가 상상했던 고대 그리스를 쓸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마지막 글감이 되어야 하는 도시는 한국으로 경유지였던 두바이다. 그 깔끔하고 화려한 도시라 오히려 다룰 것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노선을 약간 수정했다. 차라리 마음을 편히 갖고 나에게 해외여행이 갖는 의미를 쓰는 편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유독 친절했던 픽업 차량 기사가 있었다. 사실 아랍 에미레이트 국민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두바이 전체 노동 인구 대부분은 사실 그래서 외국인이다. 우리와 함께했던 그분도 파키스탄 출신이었다. 우리는 두바이 시내를 구경하며 가볍게 잡담 나눴다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고향이 어디예요?”
“전 카슈미르 사람이에요. 아시아의 스위스. 어딘지 알아요?”
“와, 당연히 어딘지 알아요. 그 튤립이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네, 그래서 옛날 의사들은 사람들을 진료하곤 처방으로 카슈미르에서 요양하라고 했어요.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에요. 특히 물이 좋죠. 꼭 한번 가보세요,”
고향 카슈미르가 어딘지 아는 동아시아인을 만난 게 신났는지 이야기를 더 이어 나갔다. 머나먼 고향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나 역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카슈미르, 캐시미어와 튤립의 원산지인 그곳은 외국인이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지대이자 지금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쟁 지역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방문하게 되며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게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여행 적색경보 지역이기도 하다.
호텔로 들어와 소셜미디어를 펴보니 아랍 지역으로 자동으로 접속되었나 보다.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으로 난리다. 아랍인들은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를 느낀다. 아랍어로 되어있는 글들은 다 알아볼 수 없었지만, 번역기를 통해서 분노가 전해졌다.
가끔 한국 안에서 살다 보면 세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쉽지 않다. 나의 우주는 한반도 남쪽 작은 땅의 어느 도시로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 어느 한쪽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비극만 계속되는 건 아니다. 물론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성공들도 세상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곳 두바이에서 그렇듯이.
최근에 해외여행은 소비에 불과할 뿐 경험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글쎄, 결국 열심히 일하라는 그 정도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는 경험이 아닌지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충분히 생각해볼 화두인 것 같다. 해외여행은 무엇을 경험시켜줄까. 왜 어른들은 젊었을 때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이야기할까. 무엇보다도 왜 우리는 결혼을 하면 신혼여행 다녀올까.
거창한 대답은 아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할지라도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세상에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여행을 통해 깨닫는 우리 고민의 해답이 다양성인 경우가 많다.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문제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 자기 자신은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공간을 바꾼다. 그렇기에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을 만나기 위해 높은 산이나 성지로 여행을 떠났던 것으로 생각한다. 자아 찾기 여행은 아닐지라도 익숙함에서 떨어지는 것은 언제나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행 마지막 날, 사막 모래언덕에 아내와 같이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사막의 일몰을 구경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름 길었던 여행이 끝나갔다. 한국에 돌아가서 할 일들에 대해서. 이제 시작할 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또 내 퇴사를 이야기했다.
“괜찮아. 다 할 수 있어.”
아내는 충분히 고민하고 한다면 다 해낼 수 있다고 대답했고, 그 대답은 충분히 힘이 되었다. 하긴 그리스에서 어느 작은 빵집을 하든, 두바이에서 멋진 사업을 하든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혹시 알까? 이번 그리스 여행을 계기로 그리스 요리에 눈을 떠서 한국에서 최초로 크레타 음식 전문점을 하게 될지. 그럼 가게 실내장식은 그리스 신전처럼 할 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걸 알지만, 그런 삶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면서 힘이 난다.
3. 다시 돌아오는 길
아내는 A380 비행기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큰 상용 항공기라고 한다. 2층 구조의 초대형인 그 크기 덕분에, 문외한인 나도 손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단종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내 자식 세대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2층으로 된 비행기가 있어서 신혼여행 때 그걸 타고 두바이에 다녀왔다”라며 자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도 좌석 앞 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신혼여행 쓴 일기를 펼쳤다. 아니, 일기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짧은 기록들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매일 짧게나마 글과 사진으로 과정을 담았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글은 지극히 사적이었다. 그날 본 풍경이나 유적지보다는 내가 느낀 감정들을 더 많이 적어놓았다. 이를 토대로 정제해서 신혼여행기를 완성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누군가에 읽히기 위한 정보 전달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가끔은 기대치 않았던 순간들이 더 기억이 많이 난다. 예를 들어 어느 여행을 떠올리면 방문했던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안개 낀 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녔을 때가 더 생생하다.
이번 여행도 그럴 것이다. 갑자기 비가 내려 외출을 취소하고 호텔 방에서 보았던 미코노스의 풍경, 크게 음악을 틀고 달렸던 그리스의 고속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기온이 40도가 넘는 두바이 길거리에서 길을 잃어 땀에 범벅이 되어버린 옷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름 길었던 해외여행을 끝내고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순간은 늘 어색하다. 도착해서 한동안 비워두었던 집에 들어와 짐을 푼다. 옷들은 이미 다 빨랫거리들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 온 기념품들도 순서대로 먼저 분류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돌아온 곳이 신혼집이란 점이 다르다. 그리고 정리 과정을 같이 해야 할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생활도 같이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신혼여행을 통해서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적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짧고 소중한 10편짜리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덕분에 글을 통해 먼저 반추했기 때문에 남길 수 있는 것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이때 기억나?”하면서 여행의 순간순간들을 아내와 이야기한다. 시시콜콜한 것이 많다. 그래도 신혼여행이 그런 추억이 될 수 있다면, 그 여행은 대성공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