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의 의미
현대 모터 스튜디오란 한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체험 공간이다. 당연하겠지만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자사의 차량을 홍보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뒤에 방문하는 편이 좋다.
나름으로 고양에서는 명소로 꼽히는 장소라고 한다. 가족 체험 공간으로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 바글거린다. 내가 갔을 때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찾기도 하였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그래봤자 기업 홍보관에 불과하겠지만, 자동차라는 콘텐츠가 가진 매력 덕분에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하게도 주차장 입구부터 콘셉트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두었는데, 아무래도 차가 주인공이다 보니 효과적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마치 미래 공간으로 들어서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올라오면 현대자동차의 다양한 차종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런 차량을 커다란 레고 블록과 크리스마스 나무 조형물 사이에 위치시켜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자동차를 선물 받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자동차는 결국 장난감”이란 말을 형상화한 듯 했다.
이 로비를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아마도 현대 자동차를 어린 시절부터 좋은 기억을 가진 브랜드로 만들어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아이들의 슈퍼스타는 누가 뭐래도 트럭인데, 트럭 시트에 앉아보고 싶은 아이들이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체험의 주가 되는 전시는 기본적으로 자동차 기술의 자랑이다. 홈페이지의 표현대로 “현대자동차의 기술력과 미래 비전을 친근하고 즐겁게 체험”하기 위한 전시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가면 로봇팔들이 차량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체 내 각각의 기능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이 이어진다.
전시의 눈높이가 아무래도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맞춰져 있었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수소전기차 생산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전시 후반부였다. 현대자동차의 미래 먹거리로서 확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해외에서는 시험조차 못 하는 수소전기차를 양산하여 판매하는 현대자동차의 기술력은 어떤 의미에서 과소평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장을 지나면 현대자동차가 최근 관심을 두는 모터스포츠 부분에 대한 홍보가 있다. 사실 모터스포츠에 대한 현대의 무관심은 한국의 팬들에게 아쉬움을 느끼게 했었다. 하지만 최근 팀을 만드는 등 관련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어 설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차에 대한 묘한 애착이 되살아났다. 어쩌면 대단히 수준 높은 홍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리기에 앞서 “우리는 차를 너무 좋아하는데, 너는 어때?”라며 묻는 듯하다. 자동차는 어찌 생각해보면 그냥 단순한 기계 장치 군(群)에 불과하다. 마치 냉장고나 전자레인지처럼. 하지만 냉장고나 전자레인지의 팬은 없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으니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2. 나의 첫 캠핑 체험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전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캠핑을 체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캠핑 체험이라기보다는 캠핑카 시승에 더 가까운 프로그램이었다. 열쇠를 받아 캠핑카를 빌려 김포로 몰고 가 캠핑 장에서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는 코스다.
물론 자고 오는 것이 아니니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프로그램일 것이다. 하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야외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이 정도 캠핑도 충분히 큰 도전이다. 굳이 따뜻하고 안락한 집에서 벗어나 불편하고 추운 곳에서 식사하고 잠을 자는 캠핑이라는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나의 첫 캠핑 체험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모든 캠핑 준비물이 예약해 둔 덕에 캠핑카 한쪽 구석에 실려 있었다. 이런 점까지도 어쩌면 캠핑에 있어 애송이 같아 오히려 좋았다. 고생해서 직접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는 미리 준비된 차와 샌드위치를 맛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차고가 좀 높은 것을 빼면 운전은 금방 익숙해졌다. 고양에서 김포로 나가는 길은 다행히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강을 따라 차를 몰고 있자니 작은 해방감이 느껴졌다.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 내 어렸을 적에는 왜 굳이 서울 사람들이 늘 주말마다 서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나 역시 주말에나마 도시를 벗어나자 마음이 편해지는 어른이 되었다.
캠핑 장으로 가는 길은 다행히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도 충분했다. 북한이 제법 가까운 곳에 있는 고즈넉한 장소였다. 매점이 가까워 마음에 들었다. 캠핑카를 주차하고 마치 변신 로봇이라도 되는 것처럼 버튼을 눌렀다. 곧 차 천장이 높아지고 앞에 처마가 생기고 뒷공간에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냉장고에 바닥 난방까지 갖춰지어 있어 편안했다. 캠핑을 시작하자마자 음식부터 개시했는데, 주변에 고양이가 혹시 남는 것이 없나 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렇게 가져온 책을 펼쳐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정도 캠핑의 그 맛이라는 것을 알 것도 같았다.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것은 늘 바라던 것이지만 왜인지 집에 있으면 누리기 쉽지 않다. 아내의 말 따마 ‘내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책이라도 읽으려면 청소할 것이나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눈에 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바란다는 것은 집중하고 싶다는 뜻의 다른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야외로 나와 자연을 직접 마주하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적어도 캠핑 하면서의 이날 독서는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전화가 왔다. 체험 시간이 곧 끝나간다는 안내였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바로 매점에서 사 온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컵라면은 캠핑에 대해 가진 몇 안 되는 나의 로망이었다. 그렇게 마치 의식처럼 추운 날씨에 면발을 호호 불어먹으면서 마치 의식처럼 캠핑 체험을 끝마쳤다.
3. 벨로스터 이야기
모든 전시와 체험을 끝내고 주차해 둔 차로 돌아왔다. 내 차는 벨로스터라는 차종으로 벌써 5년이나 된 나의 첫 차다. 이제는 단종되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나의 이상한 취향과 고집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해치백을 선호했다. 마치 유럽의 차처럼 날렵하고 작은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첫 차를 살 때 주변에서는 반대했었다. 더 무난한 선택을 하는 편이 어떻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꼭 이 차종으로 하고 싶었다. 가격 같은 고려사항을 넘어서 첫 차는 묘하게 중요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인제 와서 물론 후회하지는 않는다. 설계상 차문이 3개뿐이라 가끔 사람들에게 이건 무슨 도깨비 차냐며 핀잔을 듣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자랑스러운 첫 차다.
그런데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내 차와 나 사이 관계에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다. 처음으로 여행 도중 자동차를 빌리게 된 것이다. 렌터카는 처음이다 보니 기분을 내고 싶었다. 큰마음을 먹고 천장이 열리는 외제 차로 예약했다. 그렇게 제주 공항에서부터 외제 차를 처음 몰고 제주도 해안가를 달렸다.
그다음부터 묘하게 조강지처(糟糠之妻)인 벨로스터가 예전만치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기 시작됐다. 예전에는 차를 처음 사고 아내와 별명을 지어주자고 하여 고민하다가 “벨로벨로”라는 애교스럽게 불렀지만, 점차 그것도 뜸해졌다. 아마도 다른 차를 처음 운전해보니 갖게 된 아쉬움 같은 감정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먼 길을 다녀오는 도중에 백미러에 미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 머리가 무거울 때,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 있을 때 운전 하면서 기분을 풀 때가 많았다.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위안일지도 모른다. 운전은 그렇게 나의 자존감에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깨닫자 어느새 내 차 벨로스터 역시 다시금 자랑스러웠다. 내 차에게 고마워지는 순간은 누군가에게나 온다고 생각한다. 언제 그 순간이 오는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괜히 먼 거리를 운전하고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단순한 고철 더미에 불과하지만, 차는 무언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자동차가 다른 기계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리 많고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또 관련해서 현대 모터스튜디오가 고양의 나름 명소가 될 수 있는지 역시 그렇다. 차는 더더욱 개인적인 경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 혼자 운전하고 싶으면 차와 나뿐만 있는 그 기분에 젖고는 한다.
그렇기에 하물며 첫 차인 나의 벨로스터는 더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멋지고 좋은 차를 많이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나의 차, 벨로스터는 늘 그렇듯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