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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20. 2023

들어가며: 영화는 텍스트다

영화를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우리의 인지적 틀 

영화는 텍스트다. 

이는 곧 영화를 읽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읽어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읽어낸다. 이를 지각이라고 한다. 감각과 지각은 다른 개념이다. 감각은 우리 주변의 물리적인 자극을 신경 정보로 전환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반면 지각은 입력된 감각 자극을 조직화하고 해석하여 대상이나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하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가정해 보자. 쿵 하는 소리 그 자체는 물리적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극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소리를 천둥소리로 인식하여 곧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고, 다른 이는 그 소리를 적군이 쏜 포탄 소리로 인식하고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칠 수 있다. 사실 소리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 소리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그저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동일한 자극을 서로 다르게 읽어낸다. 


하늘에서 나는 쿵 소리를 왜 포탄이 터지는 소리로 인식했을까? 그렇게 지각한 사람은 폭발물 사고나 전쟁 같은 사건을 경험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지각’하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경험이나 살아온 배경 같은 것들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내 주변을 둘러싼 삶의 환경과 경험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형성한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각자 틀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 틀에 맞추어 세상을 지각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텍스트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상 텍스트이다. 텍스트는 문자에 기반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지적 틀에 대어 읽어낼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영화는 방대한 정보와 자극을 제공한다. 최초의 영화는 시각 정보만 제공했다. 유성 영화의 시대를 거쳐 영화는 음성까지 제공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온갖 영상˙영화기술과 융합되며 인간의 거의 모든 감각기관에 다채로운 자극을 줄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영화관들은 상영하는 영화의 장르, 내용, 분위기에 맞추어 상영 환경을 섬세하게 기획함으로써 관객들의 몰입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즉 우리가 영화를 보는 장소의 환경까지도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를 읽어내는 맥락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읽어낸다. 포털 사이트의 평점과 별점 그리고 비평이 사람들이 영화를 읽어낸 결과들이다. 평론가들도 길고 짧은 평론을 낸다. Guest Visit (GV) 은 감독, 배우, 전문가 그리고 관객이 각자 어떻게 영화를 읽어내었는지 소통하는 자리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인지적 틀이 있는 것이고 그 틀에 대어 읽어낸 영화의 감상은 최소 백 개가 도출될 수 있다. 하나의 영화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들을 읽고 있으면 글쓴이 한 명 한 명의 삶의 궤적을 어렴풋이나마 엿보는 것 같아 무척 흥미롭다.

 

문제는 태도다. 각자가 영화를 읽어낸 서로 다른 결과들을 그 자체로서 인정하는 태도. 이는 나와는 다른 모습, 다른 얼굴로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과 맞닿아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오독’이라고 말하며 깎아내리는 시도를 꽤 자주 목격한다. 오독 즉 잘못 읽어냈다는 것인데 이때 오독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이나 각본가가 최초로 의도한 바에서 벗어난 해석을 한다면 그것이 오독인가? 업계에서 권위 있는 평론가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낸다면 그것이 오독인가? 만약 어떤 감독이 자신은 평소 아무런 의도 없이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면, 그 감독의 영화에서는 무엇이 오독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오독을 수반한다. 이는 텍스트를 읽어내는 행위자가 지식이 없거나 교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인지적 틀이 서로 다른 모양과 재질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텍스트에 대하여 모두가 다른 해석을 내어놓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읽어냄은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오독인 셈이다. 모든 것이 오독의 결과물이라면 결국 모든 것은 정독의 결과물이다. 


한국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불확실성을 회피하려고 하는 선호가 아주 강하다.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홉스테드 (Geert Hofstede)가 제안한 문화 차원 이론에 기반하여 국가별로 문화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불확실성을 피하고자 하는 문화가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다. 불확실성 회피 문화가 강한 나라들은 엄격한 신념과 행동 규칙을 유지하고, 비정통적인 행동과 아이디어를 잘 용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떤 문화적 가치가 좋고 나쁘다고 가치 판단할 수 없지만, 텍스트를 읽어내고 공유하는 행위에서조차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조금 곤란하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에 엄격하고 확실한 규칙 같은 것은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속성은 확실보다는 불확실에 더 가깝다. 다큐멘터리나 포토 저널리즘처럼 사건과 현상의 사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영역도 있지만, 결국 이 또한 전달자가 포커스와 프레임을 어디에 걸치느냐에 따라 불가피하게 주관이 개입된다. 사건과 현상이 수용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수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누구도 확실하게 예상할 수 없다. 정보와 자극이 오고 가며 이를 감각하고 지각하는 행위에는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그것의 이차적인 결과로 또 어떠한 창조적 결과물이 탄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이제부터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몇 가지의 영화를 읽어낼 것이다. 이를 위해 나의 인지적 틀을 동원할 것임으로 당신은 어딘가 모를 생소함이나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말일 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한 문화예술을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착각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불확실을 확실로 만드는 작업은 때때로 개성의 말살과 획일로의 지향을 낳는다. 마음껏 오독하자. 나의 글을 읽을 때 당신은 당신의 인지적 틀을 동원할 것이다. 그때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는 만난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는 겹쳐지며 확장된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면서. 




커버 이미지 디자인: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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