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대입 이야기에 사교육이 빠질 수가 없다. 사교육 업계와 그 종사자들을 악마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은 그저 똑똑한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자본을 당겨오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돈을 버는 자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사교육계의 스타강사들을 중심으로 왜곡된 대학 입시의 신화가 재생산되고 강화된다. 스타강사들의 학벌은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입시 지옥을 견뎌내고 승리를 쟁취한 신화 속의 영웅들이다. 그들은 강의를 하고 교재를 팔아서 수 백억의 매출을 올린다. 강의 중간에 그들은 자신이 겪은 영웅담을 학생들에게 설파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학벌이 과거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학벌이 좋다고 나쁠 일은 없다는 식으로 둘러 말한다. 수강생들은 스타강사들의 궁전 같은 고급 빌라와 수 대의 외제차를 우러러보며 그들을 신격화한다.
최근 한 사회탐구 영역의 스타강사가 수능의 생활과 윤리 과목을 3분 내로 풀이하고 등급컷까지 정확하게 예측해 놀라움을 샀다. 그 영상에는 강사를 칭찬하는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달렸다. 한편으로는 사회 탐구를 얕잡아보며 야유를 보내는 이들의 댓글도 보였다. 수년간 한 업계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강사가 수능 문제를 빠른 속도로 풀어내는 영상이 천 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의문이다. 인공지능에게 그간의 사회탐구 영역 기출문제를 학습시키고 수능 문제를 풀어보라고 명령하면 몇 초 내로 만 점짜리 답안지를 내놓을 것이다. 암기해서 정답을 내놓는 일은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잘한다. 등급컷을 예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스타강사들의 삶 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을 보면서 삶의 동기부여를 얻는 많은 이들을 무시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 숨은 사회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대학에 간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생전 처음 접하는 온갖 사회적인 문제들과 부닥치게 된다. 그 사실을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 대형 학원의 스타 강사들도 수강생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학벌을 기준으로 개인과 집단을 구분하는 세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을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일어났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기사에는 두 학교 중 어디가 더 나은지, 어느 학교가 급이 더 높은 지를 논하는 소모적인 댓글이 왕창 달렸다. 연고전 축제 참가를 두고 본교와 분교 사이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고 분교를 향한 본교 학생들의 조롱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런 극심한 갈등과 양극화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우선 대형 학원과 스타강사들이 지난 수 십 년간 돈을 쓸어 담았다. 놀지도 자지도 말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정답 맞히기 훈련에 몰두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대학에 가라는 신화를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생산하고 강화한 대가로 말이다. 공교육과 사교육 장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입 신화에 장기간 노출된 부모와 아이들은 가정의 모든 자원을 끌어 모아 성적을 높이는데 투자한다. 그렇게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보다 못한 암기 능력과 쥐꼬리만 한 지식이다. 극심한 양극화로 인한 시민사회의 내부 갈등은 이기적인 정치인과 기득권 세력이 가장 선호하는 현상이다. 연대해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싸워주면 그 틈을 타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죽도록 피 터지게 싸워서 너희들 중 살아남는 일부는 나처럼 높은 자리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유혹하면서. 그러나 그 유혹은 허상이다.
9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강영연. (2023. 06. 28). 일타강사 연봉…직장인의 150배 넘어.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62023771
김현정. (2021. 01. 02). 연봉 100억, 이적료 90억…억소리 나는 `1타강사`의 세계.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ociety/9692780
김현정. (2021. 01. 03). "1년의 절반을 찜질방에서…" 100억 수입 `1타강사` 운이 아니다.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ociety/9693041
정혜정. (2023. 03. 07). 연 316억 버는 이지영…현실 ‘일타강사’의 비밀 풀었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5045#home
KBS 대구. (2023. 12. 11).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경북대-금오공대 통합’ 논의 “안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2UDMYSc9kLc
KBS대전뉴스. (2023. 09. 11). "너희는 고려대 짝퉁 조려대"…지방캠퍼스 차별 논란. https://www.youtube.com/watch?v=8OD72dolWs8
YTN. (2023. 12. 12). 대학들, 사활 걸고 따냈는데….’글로컬 사업’ 가시밭길 예고. https://www.youtube.com/watch?v=Tu56Ywfip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