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7)

by 힙합스텝

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독일의 교육의 장에는 경쟁이 없다. 경쟁이 한국보다 덜 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경쟁 자체가 없다. 대학 입학 시험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만 있다. 순위를 매기는 일은 없다.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대다수가 졸업 시험에 통과한다. 그러면 아무 대학, 아무 학과나 원하는 때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독일에서도 의대에 지원이 몰리기는 하지만 몇 번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3년 정도만 기다리면 누구나 다 의대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으로 의대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일로 돈을 벌겠다는 인식 자체가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교육에서 경쟁을 소거해도 독일 사회는 잘 굴러간다. 심지어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들 중 하나다. 대학 입학과 경쟁이 모든 문제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신화다. 우리는 현실이 아니라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지위를 누리고 싶어한다. 소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 것처럼 보이는 -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20190201_134617_3220.png 이미지 출처. 드라마 <SKY 캐슬> 공식 홈페이지. https://tv.jtbc.co.kr/photo/pr10010969/pm10050297/detail/13442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것 외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무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것은 돈이다. 드라마 <안나>에서 “세상엔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데 만약 안 되는 게 있다면 혹시 돈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자”라는 대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사에 공감했다. 사실 대입조차도 돈이 많으면 순식간에 해결된다. 현금이 정말 정말 많다면 기부 입학을 하면 그만이다. 대대손손 물려줄 재산이 차고 넘친다면 대학을 그냥 안 가버려도 된다. 그렇지 않은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중산층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족하지는 않지만 대를 이어 물려줄 만큼의 자산이 없는 중산층에서나 자녀의 대학 입시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형성된다. 중대한 범죄도 비싼 변호사를 쓰면 형량이 준다. 더 많은 돈을 들이면 증상의 심각성과는 관계없이 더욱 질 좋은 의료 서비스와 돌봄을 받을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반 지하에 살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수해를 입어 목숨을 잃는 일도 없다. 돈으로 일자리도 사고, 사업도 따내고, 대학 편입도 쉽게 한다. 돈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정답 중의 정답이다. 그러니 모두가 돈을 쫓는다. 돈이 부족해도 다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것을 찾고 개발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조차도 돈이 되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해버린다. 모로 가도 정답을 찍기만 하면 되듯이 정말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된다.


잼버리 사태 때 부랴부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예비비를 추가로 지출했다. 이미 1000억 이상 예산이 집행된 사업에 문제가 생기자 돈을 더 당겨 가는 식으로 해결을 하고자 한 것이다. 충북 괴산에서는 군민 화합을 위해 초대형 가마솥 제작에 5억원을 사용하였는데 2007년 이후 방치하여 애물단지가 된 상황이다. 그 가마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에만 또 2억이 필요하고 한다. 안전 사고가 생길 때마다 유가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안전 사고가 애초에 생기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아무 고민 없이 일단 돈부터 들이고 보자는 식의 접근법. 모든 문제를 주먹구구식으로 손쉽게 처리해버리려는 행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유가 증발해버린 교육의 장에 있다.


사유가 없다. 지식의 투입과 재현만 있고 교육의 장에 사유와 창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없다. 타인의 생각을 집어넣기에 급급하다. Education의 E-는 ‘밖’이라는 뜻이고 deuk-는 ‘이끌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Education은 ‘밖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지식을 두뇌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행위가 교육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학생들이 12년동안 자기 안의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체험을 잘 해보지 못한다. 지식을 집어넣고 그것으로 시험을 치고 성적을 받는 행위만 반복한다. 대학에 가면 이 모습이 달라질까? 똑같다. 고등학교 때와 같은 모습으로, 같은 방식으로 공부한다. 강의록이나 전공 교재를 통째로 암기하거나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 적고 답안지에 그대로 옮겨 쓴다. 질문은 실종됐다. 질문하고 사유하는 자는 야유를 받는다. 정말 야유를 받는다. 나낸다고. 잘난 척을 한다고. 무슨 그런 우스운 질문을 하느냐고. 수업시간이 늘어난다고. 야유를 받는다. 이론과 법칙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사상가가 한국에서는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이유다.


8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오세진. (2023. 08. 14). ‘잼버리’ 1171억 어디에 누가 썼지…폭염 예산은 2억뿐인데.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4186.html

최종권. (2023. 01. 30). 괴산 ‘43t 애물 가마솥’ 운명은.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6700#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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