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가 정답과 오답을 갈라 채점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입시 과정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숨 쉬듯 해댄다. 일단 대학에 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좋은 대학,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만 하면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연애도 할 수 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른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입이 마치 우리 인생의 만능 해결사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은 신화와도 같다. 입시 신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인생의 꽤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던 시기도 과거에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대학 입학으로 여러 이점을 누리는 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가 대학에 입학해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입이 꼭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신화는 상담 심리에서 경직된 인지 도식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가족끼리 모든 사소한 일과 사사로운 감정을 전부 공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가족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족 신화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은 방 문을 닫고 대화를 하지 않는 사춘기 자녀의 행동에 지나치게 서운해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다.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부모로부터 서서히 독립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발달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경직된 가족 신화에 사로잡혀 자신의 머릿속에 써내려 간 시나리오대로 가족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필연적으로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대학에 입학하면 여러 문제들이 알아서 잘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괴로워진다. 대입 신화의 희생자들이다.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대학에 오면 더 많은 과제와 시험들에 파묻히게 된다. 대인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여자 고등학교나 남자 고등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꽤 오랜만에 접하는 이성 친구들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애인이 생기기는커녕 이성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막상 공부해 보니 학과가 자신의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에 오니 사람 하나가 겨우 누울 방 하나가 몇십만 원을 하고 용돈은 늘 모자라다. 내 옆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행복하고 잘 나가 보인다. 휴학하고 싶지만 집에서는 반대한다. 취직이 잘 풀릴 것 같지도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의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아가 너무 약해진 채로 대학 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지적하였다. 강한 자아를 지니기 위해서는 자기 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을 높일 수 있는 성취 경험이 있어야 한다. 자기 손으로 직접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고 그것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 개인이나 집단의 자격으로 어젠다를 설정하고 그것을 관철시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 본 경험. 이러한 크고 작은 경험들을 반복하여 축적할 때 우리의 자아는 강해진다. 그러나 한국의 학생들은 이러한 성취를 타인에 대한 비교 우위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우위를 점하지 못한 다수의 학생들은 일단 실패자가 된 채로 사회에 던져진다.
독일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정치적인 활동을 할 것을 장려한다. 이는 독일의 교육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잘못된 규범에 대해 비판하고 새로운 규범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매우 강조한다. 엄격한 비판 교육이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대자보를 쓰고 시위를 하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정치적인 집단을 형성하여 시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알리려는 시위, 난민을 더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위, 심지어는 휴대폰을 쳐다보느라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는 부모를 향한 시위까지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주장에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하며 이것이 실제로 현실 정치에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힘을 모아 사회, 정치, 문화를 바꾸는 경험을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해오는 것이다.
7부에서 계속
추신: 독일의 교육제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김누리 교수의 강의를 추천한다. 이 글에 기재한 독일 교육의 사례도 모두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참고하였다. 기사 및 유튜브 링크를 아래에 첨부한다.
참고문헌
김장욱. (2020. 03. 04). [차이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가 전하는 특별한 '독일 교육' 다니엘이 기억하는 독일 성교육?. 한국강사신문. https://www.lectur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52
이준현. (2020. 03. 04). '차이나는 클라스' 초등학생에게 시위 방법을 알려주는 독일 교육.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003046144I
https://www.youtube.com/watch?v=fGha3WGSFWg
https://www.youtube.com/watch?v=Tbj3WY9-Ijk
https://www.youtube.com/watch?v=N8rkO6gwf9g
https://www.youtube.com/watch?v=5UaJywOO6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