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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25. 2023

중경삼림, 신뢰가 부재한 도시 (5)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구강기 고착의 관점에서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重慶森林)

감독: 왕가위

1994년 개봉 (홍콩)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영화 <중경삼림>을 심리학의 이론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샐러드를 여자친구에게 사다 주는 모습에서도 양조위가 소통을 어려워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는 여자친구가 샐러드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가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서 습관적으로 샐러드를 사는 것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느냐고 먼저 한번 물어볼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러다가 가게 주인이 이번에는 피시 앤 칩스를 사주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자 양조위는 이렇게 대답한다. 


싫다고 하면요?


바로 이 지점에서 양조위가 관계의 단절이나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여자친구는 샐러드가 싫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괜히 다른 것을 주었다가 싫다며 거절을 할 수 있으니 아예 새로운 선택지를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거절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회피를 택하게 되어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것처럼. 거절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냥 아무것도 묻지 않고 상대에 맞춰 끌려가거나, 상대에게 다른 선택지들을 제공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거절당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관계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회피한다고 해서 결코 거절을 당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이보다 더 완벽한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상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양조위는 결국 샐러드와 피시 앤 칩스를 둘 다 포장했고 다음 날에는 피시 앤 칩스만 사게 되었다. 


거절에 취약한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관계의 단절이 생기는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자신의 선택을 유보하고 상대에게 선택할 기회와 권력을 모두 몰아주는 것도 혹시 모를 선택의 실패와 관계 단절의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고자 하는 심리적인 방어책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양조위는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 그녀가 나를 떠났고 그래서 내가 지금 슬프고 외롭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슬픈 것이 아니라 사물이 슬프고 야윈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둔갑시킨다.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마치 제삼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사물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얇아진 비누에게 뚱뚱했던 전처럼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고 젖은 빨래에게는 그만 울고 처져 있지 말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비누와 젖은 빨래가 느끼는 감정인 것처럼 자신을 속여서 관계의 단절로 비롯된 좌절과 불안을 의도적으로 달래려고 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아니니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을 것이다. 


울음을 그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대상은 비누나 빨래가 아닌 바로 양조위, 경찰 663 자신이다. 



[다음이 중경삼림 분석의 마지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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