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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Aug 05. 2023

이탈리아, 복숭아 그리고 시선 (1)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2018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


이야기는 1983년 북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이탈리아 여름 햇살은 굉장히 뜨겁다. 과일과 관계가 익어간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그해 여름 만났다가 헤어진다. 올리버는 그해 여름 손님이다.

 

사랑은 어느 날 내 공간에 불쑥 찾아온 손님과도 같다. 손님과 집주인 사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처음에는 그 긴장이 사랑인지 모른다. 손님이 내가 좋아하는 꽃병을 혹여나 깨뜨리지는 않을지, 애써 내어 온 식사가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을지 집주인은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다. 손님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타인의 공간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겨야 하기에 불편하다. 


사실 손님과 집주인 사이의 불편한 긴장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유심히 관찰하기에 생겨난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무례하게 군 탓에 상대가 감정이 상한 일은 없는지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기에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관찰은 곧 관심이다. 각자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 모두 깨닫게 될 때 관찰 뒤에 드리운 관심이 드러나고 사랑이 시작된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


그런 의미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찰일지와도 같다. 탐색전이랄까. 특히 엘리오의 시선이 두드러진다. 영화는 막 별장에 도착한 손님 올리버를 2층에서 내려다보는 엘리오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낯선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마자 엘리오는 “방 뺏기겠네.”라고 말한다. 그 이후로도 ‘My room. 내 방.’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며 자기 영역에 대한 표시를 확실히 하고 불쑥 찾아온 손님 올리버를 경계한. 엘리오의 부모는 “Our home is your home.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세요.”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올리버를 구성원의 일부로 환영한다. 그러나 엘리오는 “My room is ‘now’ your room. 내 방을 쓰세요.”라고 말하며, 당신이 오지 않았으면 언제나처럼 내 방이었을 공간을 잠시 내어준다는 식으로 사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는 자신의 영역에 진입한 올리버에게 앞으로 쭉 지켜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다. 


실제로 영화에는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호기심 어린 관찰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다윗의 별 목걸이를 한 올리버의 목을 바라보는 엘리오의 시선을 보여주는 클로즈업 샷이나, 바에서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카드놀이를 하는 올리버를 엘리오가 멀찍이 떨어져 흐뭇하게 지켜보는 장면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이때 바에서 엘리오는 선글라스를 잠깐 벗었다가 다시 쓴다. 한여름 이탈리아의 햇살에 선글라스는 필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상대를 지켜보고자 할 때도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기심과 경계심 그 사이 어디쯤을 오가던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시선은 한 사건을 계기로 돌연 적개심에 가까운 경계심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자신이 올리버를 무진장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올리버가 이미 눈치채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어깨가 너무 뭉쳐있다며 긴장을 풀라고 말한다. 너는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서. 사실 그 긴장은 올리버에 온 신경이 쏠리게 되면서 생긴 것이므로 이는 곧 자신의 관음과도 같던 관찰을 올리버에게 들킨 것과도 같다. 방의 원래 주인으로서 환경을 통제하며 상대를 관찰하던 주체의 입장이었던 엘리오는 이제는 자신도 관찰을 당해야 하는 객체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엘리오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게 되자 황급히 그 장소를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시선의 권력에서 더는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된 그는 일보 후퇴하여 새로운 전략을 구상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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