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복숭아 그리고 시선 (4)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Luca Guadagnino)
2018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엘리오와 올리버가 실은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 깨닫게 되는 장면은 영화가 무려 80분가량 지난 후에야 등장한다. 러닝타임의 절반을 훌쩍 넘긴 시간이다. 두 사람이 저지른 온갖 지질함과 답답함을 관객들은 한 시간 이십 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견뎌야 한다. 장면과 내용의 전환이 빠른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들은 마지막 15분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 15분은 이미 엘리오와 올리버가 한 차례 이별한 뒤의 이야기이다.
그해 여름 손님이었던 올리버를 기차 태워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엘리오는 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눈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성의 없이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방금 이별한 아들의 감정을 아주 정확하고 섬세한 손길로 어루만진다. 그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를 아름다운 우정 혹은 우정 그 이상으로 언급하며 사랑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다. 우정과 사랑은 다른 이름이 아니라 같은 차원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서 공존한다고 말이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자기 자녀의 성지향성을 포용하는 것을 넘어 자신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다고 고백하며 부모 자녀 간의 정서적 소통의 장벽을 완벽하게 허물어버린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놀랍도록 논리와 이성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감정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그 표현이 과하게 넘치지 않아서 굉장히 논리적이면서도 이성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상처를 잊으려고 마음의 이곳저곳을 다 파헤치고 나면 결국 서른쯤 이르러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것이라는 이토록 심오하고도 상징적인 그의 위로가 놀랍게도 너무나 논리적으로 들린다. 심지어 그는 특정한 감정 상태에 긍정과 부정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기쁨이든 괴로움이든 엘리오에게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세대 간 비극의 전수를 끊어내고자 시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영화 내내 엘리오 가족은 화목하고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 장면에서 담배를 태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그의 삶에서 전개되지 못한 이야기의 한 꼭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물론 지금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거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그가 포기해야만 했던 어느 순간이 자아내는 쌉싸름한 미련과 회한 같은 것이 그의 눈동자 너머로 느껴진다. 1983년으로부터 한 세대 이전, 엘리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엘리오의 할아버지로부터 지지받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니 엘리오의 아버지는 자기 대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전수되는 그 삭막한 비극을 사무치게 끊어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엘리오가 만약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했더라면 뉴잉글랜드의 올리버처럼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올리버가 끝끝내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로 중년이 되면 그는 영화 <윤희에게>의 윤희가 된다.
[다음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분석의 마지막화 입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076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윤희에게>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8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