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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Aug 12. 2023

담배,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 (3)

변하지 않을 그녀의 취향 그리고 삶

소공녀 (Microhabitat)

감독: 전고운

2017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영화 <소공녀>를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미소가 머물 곳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옛 대학 밴드 동료들은 우리 사회가 만든 표준과 규격의 희생자들이다. 첫째, 시댁살이를 하고 있는 키보드의 장현정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성 역할의 피해자이다. 그녀는 독박 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묘한 무시를 받는다. 그 집에서 현정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키보드를 잘 치고 곡을 잘 썼던 그녀의 출중한 능력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반면 미소는 전문 가사 도우미인데, 현정의 불행과 미소의 행복은 이 지점에서 교차한다. 미소의 가사 노동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며 그것으로 미소는 돈을 벌지만, 현정의 가사노동은 결혼과 함께 얼떨결에 부여받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둘째, 이혼 당해 폐인으로 살고 있는 드럼의 한대용은 한국 사회가 만든 신혼집 규격의 희생자이다. 그는 이혼을 했지만 신혼집으로 마련한 아파트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대출금 때문이다. 대출이자는 한 달에 원금 포함 100만 원. 그러나 그의 월급은 190만 원이다. 매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 이자 갚는데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상황은 무려 20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20년이 지나야 비로소 자신의 집이 되는 그 아파트에 그는 감옥처럼 갇혀 지낸다. 대용의 집은 누구의 집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번듯한 아파트인데, 그의 처지는 집이 없는 미소보다도 못하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셋째, 부모와 단독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는 보컬의 김록이. 사실 김록이의 집에서는 미소가 희생자가 될 뻔한다. 전문 가사 도우미로서의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공짜 노동력으로 멋대로 전환하고자 하는 기성세대의 노골적인 시도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애물단지 노총각 아들이 오랜만에 데리고 온 공짜 노동력이 이렇게 고급이라니! 미소는 그곳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넷째,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있는 기타의 최정미는 한국 사회가 만든 이상적인 여성상의 희생자이다. 늘 조신해야 하고 결코 뜨거워서는 안 되는 여성. 말수는 항상 적어야 하고 기타 같은 것을 절대 쳐서는 안 되는 여성. 정미는 '이상적인 여성상'의 가면을 쓰고서는 남편에게 삶의 권력을 모두 이양한 채 살고 있었다. 남편과 집에서 와인을 마실 때 남편의 옆자리에 앉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서 앉는 게 습관이 된 정미는 제 삶의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얻게 된 허울뿐인 경제적 안정에 취해있다. 미소는 정미의 남편과 대등한 위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고, 그런 미소를 보며 정미는 자신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초라한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자각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소공녀>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9630#


마지막으로 미소의 남자친구인 한솔도 한국 사회가 만든 남성 성 역할 규범의 희생자로 대변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다 해보는 '그렇고 그런 것'이 한솔에게는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 '그렇고 그런 것'이란 지정 성별이 이성애 커플 각자에게 슬그머니 부여하는 어떠한 역할 같은 것으로 짐작된다. 한솔은 영화 내내 미소에게 미안해한다. 남성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미소가 남의 집을 전전하게 된 것, 맛집 데이트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 모두 남자친구인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능력을 통해 가장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여성과 아이에게 안전한 안식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부여한 전형적인 남성 성 역할이다. 미소는 한솔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지만, 한솔은 그냥 죄책감에 시달린다. 미소가 만든 죄책감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것이다. 


[다음이 소공녀 분석의 마지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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