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1)

by 힙합스텝

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교육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우리 사회에 없다. 교육을 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에서 흔히들 교육이라고 일컫는 것은 사실 그저 입시에 불과하다. 교육 제도라는 것도 결국 입시 제도로 귀결된다. 나의 대입 10주년을 맞이하여 이 글의 제목 또한 대입으로 지었으니 여기서는 한국의 교육이 아니라 한국의 입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입하여 경험하였다는 것이 한국 입시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래서 입시의 병폐와 그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학력고사와 수능. 이제까지 우리가 겪은 이 모든 것이 다 잘못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모두의 노력을 헛된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들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의 입시가 얼마나 왜곡되었고 처참한지 사실상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부 피해자고 희생자이다. 수능 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주요 언론들에서는 어김없이 한국 입시와 수능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 바뀌지 않을까? 학생이고 부모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때로는 기대에 차지 않은 성적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는가? 사교육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것이 벌려놓은 계층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 부모들의 경제적, 심리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 바뀌지 않는 걸까?


우선 우리는 학창 시절 동안 우리의 주장과 의견을 관철시키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몇 시간이고 조용히 문제집을 푸는 학생을 높이 평가한다. 학교나 선생님에게 조금이라도 대드는 짓을 했다가는 바로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저 고분고분시키는 것을 착실하게 해내는 학생 그리고 성적을 잘 내서 학교와 학급의 위상을 드높이는 학생만이 칭찬받는다. 개인이나 학생 집단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가는 모두의 눈총을 받게 된다. 면학 분위기를 해쳤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성적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주변 학생들의 학업에도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한 행위 이외의 대부분의 행위가 일탈로 규정된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간으로 길러진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대학과 사회에 나가서도 집단과 권위에 순종하는 인간으로 남는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대다수인 곳에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참 어려울 것이다.


거대한 사회의 시스템 아래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금 아무 포털 사이트나 접속해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관객 리뷰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영화 속 악역 영탁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리뷰가 쏟아진다. 영탁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리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영탁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는 일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기까지 한다. 관객들은 대재앙의 시대에 개개인이 악랄해져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영탁과 대척하는 명화 (박보영)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명화는 시종일관 선한 마음을 유지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도우려 한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생존자들이 모두 명화와 같은 선한 마음과 행동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면 그들이 모여 만든 시스템은 비교적 선하게 굴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명화를 발암 캐릭터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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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538


하나의 영화 리뷰 사례를 가지고 사회 전체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관객 리뷰에서 한국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는 체계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꼈다. 부패하고 타락한 권위에 맞서기보다 기존의 시스템에 자신을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어 허울뿐인 안정감을 찾으려는 태도. 악의 축인 영탁을 척결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도모하기보다 눈엣가시인 명화를 쫓아내고 소수 개인의 안위만을 도모하려는 태도. 수 십 년간 이어진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우리 사회에 온갖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걸 뻔히 다 아는데도 기존의 시스템에 무기력하게 안주하는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는가?


2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https://movie.daum.net/moviedb/grade?movieId=143538


최기식. (2023. 03. 07). 22년 사교육 시장 26조원…월평균 1인당 41만원 지출. 로즈데일리. https://www.rose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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