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2)

by 힙합스텝

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쌓여 우리의 인지적 도식(scheme)을 구성한다. 인지도식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 기관을 통해 입력된 신경 정보들을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 그 과정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하늘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상상해 보자.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잠시 뒤에 소나기가 쏟아질 것으로 예측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가까운 거리에 적군이 쏜 포탄이 떨어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두려움에 떨 수도 있다.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다 다르게 반응한다. 인지 도식이 서로 다르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쾅! 하는 소리를 적군의 포탄으로 인식한 사람은 과거에 전쟁이나 테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니 폭발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면 자동적으로 두려움에 떨게 된다. 설령 그것이 실제 폭발음이 아니었어도 말이다.


이번에는 길 맞은편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미소를 짓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 사람은 지금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연인에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혹은 그저 오늘 하루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혼자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길 건너에 서 있던 내가 마음에 들어서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으러 다가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과거에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을 심하게 당해온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미소가 마치 나를 향한 조롱의 비웃음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니면 표정 자체를 미소가 아닌 찡그린 인상으로 아예 왜곡하여 인식할 수도 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인지 도식은 무의식의 깊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한다. 외부로부터 투입되는 정보가 인지 도식을 거쳐 처리되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경직된 인지 도식이 일단 한번 자리 잡게 되면 그 이후의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사고와 행동 그리고 감정은 자동적으로 뒤따라오게 된다. 자기 안에 형성된 경직된 믿음과 신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경직성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도 무척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 학생들은 짧으면 3년, 길면 12년 동안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게 된다. 요즘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교육의 장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훈련하고, 연습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다섯 개의 선택지 중에 네 개의 오답을 솎아내고 하나의 정답을 찾는 요령을 배운다. 사실 네 개의 오답을 전부 명확하게 골라내는 것은 그리 중요한 작업은 아니다. 정답 하나만을 정확하게 선택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것이 답인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은 부수적인 문제다. 일단 모로 가도 정답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가든 1등급만 받으면 되고 무엇이 되었든 좋은 성적만 받으면 된다.


한 학생이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다. 1교시 국어 영역부터 마지막 탐구 영역까지 모든 문제에 무작위로 답을 찍었다. 문제와 보기 그리고 선택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수능 성적표가 나왔고 이 학생은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이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 이런 학생이 만약 현실에 존재한다면 이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찍었든 제대로 풀이를 했든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성적표에 1등급이 찍혀 있으니 그냥 이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다른 예로 줄곧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한 학생이 수능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항상 1~2등급을 안정적으로 받아온 학생이 실제 수능에서는 평균 4등급의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재수를 결심한다. 이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가? 만약 이 맥락을 전혀 모르는 제삼자가 성적표만을 가지고 이 학생을 평가한다면 상위권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도 평소에는 잘했지만 수능에서 미끄러진 안타까운 학생 정도로 평가할 것이다. 그간의 노력과 성과는 인정받지 못한다. 수능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성적이 썩 좋지 않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사회와 세상 그리고 문제를 인지하는 데에 있어 어떠한 인지 도식을 형성하게 될까? 내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아이들이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정답과 오답을 골라내는 연습만을 주야장천 해왔기 때문에 세상도 흑백논리로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에 대한 답이 오직 하나의 정답으로만 귀결된다는 식의 믿음은 비합리적이고 경직된 신념이다. 사회에서 부딪히는 여러 유형의 갈등과 문제들 가운데 정답이 하나로 떨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타협, 토론, 논의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과 타인이 생각하는 정답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서 서로 대화하고 악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교육의 장에서 타협, 토론, 논의를 배우지 않는다. 대신 몇 사람이 모여 토론하는 장면을 묘사한 글을 읽거나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답을 골라내는 연습을 한다. OMR 카드가 기계 안으로 들어가 수초 내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긴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순식간에 매겨진다. 일등은 좋은 것이고 꼴등은 나쁜 것이다. 일등은 성실하고 꼴등은 게으르다. 일등은 모범생이고 꼴등은 불량학생이다. 일등은 학교의 지원을 받고 꼴등은 선생님의 눈총을 받는다. 모든 것이 흑백논리로 굴러간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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