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흑백논리의 양상은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문제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마치 문제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혹은 문제제기를 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사회에서 지워버리는 것도 가성비가 좋은 해법일 것이다. 그들을 오답 취급하고 선택지에서 제거해 버리면 된다. 그러면 남아 있는 것이 저절로 정답이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지워지는 선택지가 왜 오답인지, 남는 선택지가 왜 정답인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잘 논의되지도 않는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이 대표적이다.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지만 아이와 노인을 아예 배제해 버리는 식의 접근법은 다소 아쉽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는 긴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든다. 대부분의 문제 해결 과정이 그렇다. 모두가 퍽 만족할만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제거해 버리는 것은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정리하던 60대 여성에게 “카페는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며 자리 양보를 요구한 청년들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자리가 만석이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카페를 찾아 본인이 떠나는 것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노인에게 카페에서 떠나 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눈에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노인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어진 것일까? 그들의 인지 도식은 어떤 식으로 형성이 되어있길래 그런 말과 행동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그 노인을 내보내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자신들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것이라고 진정 그렇게 믿는 것일까? 만약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이 생성된 근원은 어디일까? ‘카페에 앉아있는 청년’은 정답이고, ‘카페에 앉아있는 노인’은 오답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장연 시위도 마찬가지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평소에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지체장애인을 만나는가? 나는 지난 1년 동안 지방 소도시에서 지내면서 지체장애인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에도 길에서 지체장애인을 마주쳐본 기억이 거의 없고 학교 캠퍼스에서 몇 명의 학우들을 만나봤을 뿐이다. 그러나 2022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지체장애인 수는 약 120만 명이다. 서울 인구를 대략 천만이라고 했을 때 10%가 넘는 숫자다. 이는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의 소도시 인구의 2배 이상이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곳의 규모 정도되는 도시가 두세 곳이 있을 때 그 도시들의 인구를 모두 지체 장애인으로만 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체 이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전장연 시위의 핵심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계획과 대중교통은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내리는 것은 무척 어려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주변 사람들의 배려나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운행 시간을 지연시킨다고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호등 음성 안내는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주어지는 신호대기의 시간이 지체장애인에게도 적절한지 의문이다. 건대입구역 사거리는 비장애인인 내가 길을 건너기에도 도로의 폭이 너무 넓고 신호가 바뀌는 시간도 매우 짧다.
나는 종종 한국의 도시가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기보다 자동차의 통행을 중심으로 계획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열악한 대중교통 이용 환경. 장애인의 삶에 대한 시민 의식의 수준. 장애인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지워지다시피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누구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에서 권력을 차지한 비장애인들이 굳이 장애인을 위해 사회의 이모저모를 뜯어고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인은 정상이고 장애인은 비정상이다. 비장애인은 정답이고 장애인은 오답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오답을 지우고 하나의 정답만을 남기는 것이고, 공교육의 장에서 그 훈련만을 해온 우리는 이미 지워진 선택지를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
4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김민석. (2016. 06. 03). 상계동 올림픽, 폐막은 없다. 1986년 ‘상계동 강제철거’의 기억. 서울대저널. http://www.snujn.com/news/2532
방제일. (2023. 03. 31). “카페는 젊은 사람이 오는 곳이에요” 노인 밀어낸 20대.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33114064851619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2). 한눈에 보는 2022 장애인 통계. https://www.kead.or.kr/bbs/presearch/bbsView.do?pageIndex=1&bbsCode=presearch&bbsCnId=123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