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제가 대입 10주년을 맞은 해입니다. 그리고 학계에 남기로 결정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학업과 연구를 하며 오랫동안 해온 생각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한국의 젠더 갈등과 경쟁의 장에는 여성과 남성만이 존재하고 그 사이의 다른 성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제3의 성은 노골적인 차별과 핍박을 받는다. 여성이 남성을 좋아하고 남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만이 정답이기 때문에 나머지 다른 형태의 취향과 선호는 모두 오답으로 취급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트랜스젠더는 더는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지만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는 여전히 성전환증을 정신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앞서 말하였듯 한국에서 장애는 지우거나 고쳐야 할 오답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젠더는 주관적이고 차원적이다.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법적으로 유형화할 수 없으며 개인의 지향과 선호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차원적인 젠더 개념을 가리켜 정신 나간 소리라고 대번에 폄하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에 유리하도록 일부러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여성과 남성 사이를 의도적으로 갈라놓고 싸움을 부추긴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젠더 다양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이미 사회적으로 오답이라 규정한 이슈를 구태여 다시 꺼내 유권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표가 떨어지니까. 정답이 이미 공개되고 채점까지 다 된 시험지에 딴지를 거는 학생을 학교에서는 골칫덩어리로 여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가장 꺼리는 상황도 복수정답이 인정될 때다.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이 여러 가지가 있다면 그건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기뻐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만이 정답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머지는 오답이 되어야만 한다. 이성애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정답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고에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요리와 미나토는 호리 선생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글짓기에 암호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숨겨 진실을 알렸을 뿐이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호리 선생에게 사실을 말해볼 것을 권하지만 요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 들을 게 뻔해.” 호리 선생은 특정한 말과 행동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식의 인지 도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의 인지 도식에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매스 게임을 할 때 아래에서 힘을 주고 버티던 미나토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호리 선생은 웃으며 “남자가 그게 뭐냐”라고 말한다. 미나토와 요리가 다툰 뒤 화해를 시킬 때에도 호리 선생은 “남자답게 악수를 해라”라고 말한다.
호리 선생은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쪽을 선택했다. 오답으로 취급받기 싫어서이다. 그는 결국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자신을 버렸다. 마치 배를 뒤집어 까고 어항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숨만 쉬는 금붕어처럼. 아이들은 호리 선생과는 달리 순응하고 길들여지기보다 목숨을 잃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미나토와 요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5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장예지. (2023. 01. 26). “성소수자 규모 파악해야”…인권위 권고 모두 ‘불수용’한 정부.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70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