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다리 사이에 앉는 건 불편해.

스리랑카 여행 3 <아누라다푸라>

by 낭만히피

<아누라다푸라, Anuradp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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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이틀을 이 친구랑 같이 다녔어. 아누라다푸라는 고대 신성도시인데 bc5세기-ad8세기 신할리족 왕국의 수도였대. 유적이 되게 되게 많은데 다 흩어져 있어서 걸어 다니기는 힘들어. 그 많은 유적지들 중에 내가 제일 궁금했던 건 ‘문스톤’ 이야. 문스톤은 반달 모양의 돌인데 사원 출입구 바닥에 설치해뒀어. 계단에 오르는 시작 지점이자 내려가는 마지막 지점에.. 그래서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 밟고 내려오게 되지. 스리랑카 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는데 윤회사상을 담고 있다고 해. 이 돌을 계속 밟다 보면 나도 깨달음 같은걸 획득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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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전은 툭툭 기사니까 관광객들을 많이 만나봤을 거 아니야. 그래서 나를 데리고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기본적인 유적지는 다 다녀주더라고. 그 바람에 지도 한 번을 안 열어 봤네 그래. 그중에는 바위 위나 나무 밑 같은 아 정말 여기다 싶을 만큼 명상하기 딱 좋은 자리들도 있었는데 새벽마다 스님들이 와서 명상하는 곳 이래. 그리고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사원이나 그에 버금가는 불상이 있는 곳도 다녔고 보리수나무도 있었고. 근데 역시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건 그 속의 삶이었어. 그중에 ‘다고바’라고 스리랑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불탑이 있어. 미얀마에서는 파고다, 네팔에서는 스투파라고 부르는 그거. 그중에 아직 미완된 다고바가 있었는데 올라가 볼 수 있길래 옆에 설치 해 놓은 아슬아슬한 철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갔거든. 미완이지만 그 규모는 무지막지해서 올라가는 내내 꽤나 살벌했다고. 그런데 거기 딱 올라가니까 다고바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저 바닥에서부터 이 높은 대까지 돌을 실어 나르는 몇몇의 여자와 남자들이. 너무 높아서 나는 바람만 불어도 움찔했는데. 그 사람들은 거기를 올라오는 이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반갑게 인사해주대.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불교 경전이 울려 퍼지는데 희한하게 구슬프게 들리더라 거참. 그리고 사원에서 꽃을 바치고 기도 올리는 사람들 있잖아. 난 그런 거 보면 그렇게 울컥울컥 한다. 기도 내용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마음이 뜨거워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법당이든 교회든 모스크든 사원이든 아무튼 신이 있는 곳에 가면 사바세계 인간들의 감사와 소망의 에너지가 가득해서 몸도 맘도 뜨거워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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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전도 불심으로 꽉 찬 불신자더라고. 가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나 본데 ‘가끔’이라고 굉장히 강조하더라. 내가 따져 물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 친구랑 맥주 한잔 하려고 술 파는 식당을 찾는데 절대 없는 거야. 술은 와인 스토어에서만 판대. 그래서 와인 스토어에서 맥주를 사들고 외진 식당에 들어가서 자릿값을 좀 내고 마셨어. 이 친구는 만난 지 3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신을 만난 것이 기적이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하다..”만 하고 있어. 뭐 3일 만에 언어를 갑자기 잘하게 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여 온 몸과 마음과 에너지를 다 사용하여 나눈 대화를 살펴보면 이 친구는 오랫동안 군인 생활을 했었고 부모님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스스로 무척이나 핸섬하다고 수시로 말하고 있으며 나를 만나고는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갔다 오면 큰돈을 벌어 결혼할 것이다.로 일축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는 애란전이 좀 불편해졌던 것 같아.

그래서 솔직하기로 했어.

하나는 돈 때문이었어. 아니, 하루 종일 나를 데리고 다니면 이 친구 일은 공치는 거 아니냐고. 그것도 이틀을. 돈은 한사코 사양하니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기름 값, 술 값, 밥 값, 담배 값..으로 공치지 않을 만큼은 썼어.

다른 하나는.. 자꾸 숙소를 바꾸래. 내가 있는 곳은 도미토리니까 불편하다고 자기 브라더 호텔로 옮기래. 아, 여기서 브라더는 친형이나 사촌 형은 아닐 거야. 그냥 동네 아는 분 정도.. 숙박비는 본인이 내겠대. 내 숙박비를 네가 왜? 아니, 그리고 내가 안 불편하다는데 자기가 도대체 왜 불편한 거야? 또 고작 하루 더 있을 건데 숙소 옮기는 게 얼마나 귀찮은 건데. 그래서 내가 까놓고 물어봤어. 난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 방에서는 나 혼자만 자는 거야? 아니면 너도 나랑 같이 자고 싶은 거야? 그랬더니, 내가 원하면 자기도 내 방에서 잔대. 나는 너랑 같이 잘 생각이 없고 내 숙소가 나한테는 딱 좋으니 그만 말해라 하고 잘랐어. 슬슬 머리가 아파오더라..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마사지를 해주겠대. 또 까놓고 물어봤어. 남자가 여자의 몸을 마사지하는 것이 스리랑카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냐? 그렇대. 그럴까? 뭐 그밖에도.. 초대를 빙자해 하루 더 있게 만들 곤 결국 방 잡고 술 마시자던가.. 툭툭 운전해 보라고 해놓고 본인 다리 사이에 나를 끼워 앉힌다던가.. 지금 생각해도 약간 힘든, 그 슬프고 느끼한 눈빛이라던가... 근데 나 그때그때 솔직했어.

툭툭 운전하는 건 재미있는데 니 다리 사이에 앉는 건 불편하다. 술 마시는 건 좋은데 방에서 마신다면 난 안 먹겠다. 등등..

솔직하게 말하면 불편할 게 없는데, 그러지 못하면 선한 의도도 오해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애란전에게 필요한 한국어 자기소개를 한글로 적어주고 소리 내어 휴대폰에 녹음해줬어. 내 작은 여행 가방을 뒤져 선물할 만한 것도 미리 몇 개 준비했어. 한국어로 쓴 편지도 함께. 언젠가 한국에 올 수 있을 만큼 한국어 실력이 늘면 다 읽을 수 있겠지. 그 날까지 파이팅하라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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