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참 다행이다.

스리랑카 여행 5 <시기리야>

by 낭만히피

버스를 타고 시기리야로 갔어. 시기리야 락 외국인 입장료가 굉장히 비싸. 그래서 요즘은 시기리야 락 보다 시기리야 락을 볼 수 있는 피두랑갈라를 많이들 간대.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그런데 말이야. 여기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대. 30분 정도의 짧은 코스인데 마지막 10분이 죽음의 구간이라는 거야. 바위와 돌 사이에 끼어서 도무지 어디를 붙잡아야 할지, 어디에 발을 지지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로 어쨌든 기어코 올라가야 하는 거지. 나는 알고 있었어. 이 길은 절대로 혼자 갈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난 혼자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지. 내가 안심하고 혼자 길에 올랐던 건, 거기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 때문이었어. 분명히 그들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어 올려 줄 것이고, 나 또한 나만큼이나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 손을 내밀어 줄 거라는 걸. 그게 사람이라는 걸. 거기가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거든. 요즘은 ‘인간적이다’라는 말이 과연 좋은 말일까 싶을 만큼 휴머니티가 사라진 세상이라지만 이렇게 서로 맞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갈 때면 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해.


딱 생각만큼 어려웠던 길을, 생각보다 더 인간적인 사람들과 함께,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피두랑갈라 정상에 올랐어. 저 멀리 보란 듯이 우뚝 솟아 있는 시기리야 락은 정말로 멋있었어. 저곳에 도시를 만들 생각을 했다니 참 놀랍지 않아?

피두랑갈라도 여느 산 정상의 바위라기엔 그 규모가 무지무지 커. 360도 주변 경관을 주욱 살피려면 나름 산책처럼 정상의 끄트머리를 돌아야 하거든. 나는 걷다가, 한 그루 겨우 피어 난 나무 밑을 그늘 삼아 앉았다가, 또 걷다 누웠다, 왔다 갔다 하며 여러 시간을 머물러 있었어. 그렇게 나랑 왔다 갔다 하던 사람 중에는 담불라에서 왔다는 호스텔 사장님이자 툭툭 기사님도 있었고, 개들도 몇 마리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 손바닥만 한 세끼 강아지가 두 마리 있었어. 관광객들이 주고 가는 비스킷 조각을 먹어 배를 채우고, 비가 내려 고인 물로 목을 축이고, 아마도 떨어진 스카프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누이고 하는 모양이야. 내 발치에 와 가만히 눕길래 살며시 어루만지며 살펴보니 빈대인지 찐득인지가 강아지 몸에 잔뜩 달라붙어 있더라.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하늘에서 비가 촤아 내렸어. 사람들은 한걸음에 비를 피해 큰 바위 밑으로 들어갔고, 강아지들도 홀딱 젖은 몸으로 들어왔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낑낑대고 있었어.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목에서 종종거리며 나 좀 데리고 가 달라고 하는 것 같았어.

아마 버려졌나 봐. 저 길은 도저히 내 손바닥만 한 강아지 혼자 올 수 없는 길이거든.

담불라에서 온 호스텔 사장님이자 툭툭 기사님이 강아지 옆에서 영 자리를 못 뜨는 나를 보더니 말했어. 그렇다면 데리고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두 손, 두발로도 겨우 오른 이 길을 양 손에 강아지를 들고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어. 그래 어떻게든 내려갔다 치자. 그다음은? 그다음엔 이 동물들을 어떻게 해야 해?

‘인간적이다’라는 말 역시 좋은 말은 아닌 거지. 결국 나는 혼자 내려왔어. 과연 이 강아지들이 성견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담불라에서 온 호스텔 사장님이자 툭툭 기사님은 나를 태워 준다고 하셨지만 좀 걷고 싶다며 마다하고 보냈어. 이런 흙길을 걷는 건 어지간해서는 피곤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갔을까. 또 다른 툭툭이 와서 서더니 버스 정거장까지 그냥 태워 주겠대. 마찬 가지로 그 말은 감사하지만 난 좀 걷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아저씨가 안된대. 버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대. 그래서 탔지 뭐. 아저씨는 시기리야에 있는 호스텔 사장님이자 툭툭 기사님이야. 아저씨 호스텔이 정거장 근처니까 잠깐 들렀다 가자셔. 평점 9.8이 넘는 아주 끝내주는 숙소였어. 오늘 아침엔 하얀색 야생 코끼리가 마당을 지나갔대. 갔더니 아저씨네 가족들이 다 나와 반기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도 한잔 타 주고 막차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어서 여유를 좀 부릴 수 있었어. 저녁까지 먹고 아저씨 툭툭 타고 가라는 걸 내일 다시 오겠다 하고 물러났지. 아저씨 눈빛이 엄청 또렷하고, 말투가 뭐라 그럴까.. 네모나서 어떤 사람들은 불편할 수도 있겠는데 아, 난 그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는 거야.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뭐랄까... 갑자기 이 가족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았어.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까 내 몸이 조금 부푸는 느낌이야.

지금 있잖아. 내일이 기다려져.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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