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 이상해. 나한테 너무 친절해.

스리랑카 여행 6 <캔디>

by 낭만히피



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


그러니까 담불라에서 버스를 타고 캔디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어.

그동안 꾸덕꾸덕 습한 도미토리에서 자느라 몸이 아주 편치는 않았으니까, 오늘은 가성 비 괜찮은 싱글 룸에서 지내보고자 예약 사이트를 한참 뒤져서 적당한 숙소를 하나 잡았어. 중심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인데, 캔디 시내는 교통 체증, 공기 탁함 등등으로 명성이 자자 하니까 어느 정도는 도심과 떨어져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마침 예약한 숙소는 시내에 도착하면 툭툭으로 무료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는 거야. 그리하여 숙소 주인장이랑 메시지로 너를 어떻게 찾아야 하느냐, 빨간색 옷을 입었네, 그럼 사진을 보내봐라, 여기 있다, 어디쯤 왔느냐, 거기서 내려라!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하차 지점에 도착해 큰 짐 가방을 들고 딱 내렸는데!


세상에 발치에 두었던 작은 가방 (사실 진짜 중요한 건 거기에 다 들어 있잖아.)을 버스 안에 두고 내린 거 있지. 순간 가슴이 철렁하더라고.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달리는 버스를 따라 뛰고 있고, 그러다 보니 큰 가방은 내가 내린 자리에 그대로 있고, 큰 가방이냐 작은 가방이냐 무얼 사수해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는데... 큰 가방 옆에 있는 처음 보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우리가 맡아 줄 테니 얼른 버스를 따라 뛰어가라 하고, 버스 안에 있던 차장님은 달려오는 나를 보고 놀라서 몸을 내밀고는 무슨 일이냐고 하고.. 말은 안 통하고.. 나는 큰 가방을 향해 뛰었다가 작은 가방을 향해 뛰었다,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정말 말 그대로 미치겠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많은 차들 사이에서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천천히 늦추더니 버스 차장님이 내 작은 가방을 갖고 내려서 나한테로 뛰어 오는 거야. 고개를 푹 숙여 연거푸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내 큰 가방 옆에 있던 그 모르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단체로 다행이라는 듯 푸근한 미소를 띠며 내 가방을 단단히 지키고 있더라. 그리고 주변에 있던 경찰들은 다 뛰어 와서 괜찮냐고 안심시켜주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도... 왈칵 눈물이 났어. 이 사람들 너무 이상해. 나한테 너무 친절해. 내 실수인데... 그 가방이 뭐라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다 같이 도와주고 그러는 거야? 나보다 더 놀라고, 나보다 더 다행스러워해 주고 그러는 거냐고?





바보 같은 나를 백번 천 번 탓하며 숙소에 도착했어. 숙소는 사진보다 좋지 않은 뷰와 설명보다 먼 거리를 자랑했고. 그래도 오랜만에 싱글 룸을 쓰니 맘 편하게 짐을 여기저기 흩어놓고는 밀크티를 한잔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어.

여기는 숙소 주인장이 그렇게 유명하고 인기가 많더라고. 수염 풍성하고, 음악 크게 틀고, 파티 좋아하고, 사람들은 바닥 여기저기 늘어져 있으며, 약간은 허름하고, 인도풍의 장식과 향이 있는.. 그런 스웩 알지? 내가 좋아하는 거.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있는 동안은 주인장이 없대. 가족 같은 자기 직원들이 날 맞아 줄 거라더라. 그래 그 가족 같은 직원인 그 친구. 어찌나 다정하게 맞이하던지...


귀걸이가 예쁘다며 귀를 만지는 건 시작에 불과했어. 숙소가 시내와 거리가 좀 있으니까 마트나 식당도 가기가 쉽지 않았거든. 그래서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 음식이며 맥주 등을 사다 주고는 하더라고. 맥주 마시겠냐고 묻기에 나도 냉큼 부탁했지. 내 맥주를 사며 본인 것도 사 왔어. 같이 마셨지. 나는 또 그런 거 참 좋아하잖아. 같이 맥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거. 그런데 이 직원이 이런 분위기를 연출했어. 조명은 어둡게, 음악은 크게, 목소리는 낮게, 의자는 바로 옆에서 최대한 가깝게. 아, 그리고 이날 이 숙소에 머무는 게스트는 나 한 명, 호스트는 걔 한 명. 여기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산꼭대기 외진 곳이라는 것도 말해두어야겠다.


술도 잘 못 하는 것 같던데.. 맥주를 마시며 점점 가까이 오던 이 사람을 잠시 그대로 두었더니 얘 몸이 내 몸에 달라붙어버렸어.

“조금만 좀 떨어져 줄래? 이렇게 가까이 앉으면 나는 불편하던데.”라고 말할 때까지.

알았다며 떨어져 앉은 그는 이번엔 만지기 시작하더라고. 손만 살짝 대던 터치에서 조금씩 시간을 늘리더니 그 손으로 내 팔이나 다리를 문지르기 시작했지. 어떡해. 또 말했어.

“그만 만지겠니?”

왜 그러냐고 만지는 거 싫어하냐고 물어보더라고.

“필요에 의한 가벼운 터치는 괜찮은데, 이렇게 비비고 문대는 거 싫어. 아... 니가 하는 거는.”

그제야 그 친구가 호스텔 직원으로 돌아갔어. 목소리도 좀 커졌고, 적당한 서비스와 친절을 베풀었고.



(문득 옛 생각이 하나 스치고 지나간다. 작은 분장실에서 서서 한참 거울을 보고 분장을 하고 있었는데, 남자 선배 하나가 내 바로 뒤 바닥에 앉았어. 그 선배는 평소에도 어떻게든 몸을 만지는 사람이었어. 조명이 꺼지면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마사지를 해준다며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힘들다고 호소하는 여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지. 그 날 나는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바닥에 앉아 있던 이 선배의 엄지발가락이 서서히 내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더라. 조금씩 내 치마를 걷어 올리면서. 내가 뒤를 돌아보고 물었어.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그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 “왜 발로 하는 거는 싫어?” 재미있는 건지, 무식한 건지.

주변 사람들한테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이 일은 너의 일이니 네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직접 말했어.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말했고, 내 몸을 당신이 자유롭게 만지는 것을 그만두라고 당부했어. 그 선배는 저 직원과는 다르게 선배로 돌아가지 못했어. 이유 없이 화를 냈고, 그 화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서먹서먹해졌지. 그때는 조금 무서웠던 것 같아. 앞으로 마주 할 세상이 계속 이런 곳일 까 봐.)


아마도 오늘 밤 여기서 저 가족 같은 직원과 나 혼자 자게 될 텐데, 나는 사실 무섭고 불편하고 그런 거는 없어. 나는 그래. 다른 여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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