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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raeth Dec 08. 2022

안 다쳐서 다행인 날

마라 맛 육아.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하나같이 우리 엄마가 육아의 최상 난이도를 겪은 사람일 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동의는 한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큰 사건은 없다. 그저 잔잔하게 말 안 듣는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아직 뭐라고 단정 짓기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냥 그런 날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엄마와 함께한 작고 대단한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날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90년대 중후반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주말에 자주 서울 구경을 가곤 했다. 내 동생은 남자아이라 그런지 잘 부수고 험하게 놀아서 옷도 금방 금방 닳았는데, 그런 동생과 나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특히, 남대문 시장과 명동 쪽을 자주 갔다. 뭘 먹었는지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명동교자를 꽤 자주 갔다. 칼국수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순간에 엄마는 늘 우리에게 결혼 전 엄마가 이 근처에서 일할 때 자주 왔던 곳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그게 내가 아는 엄마의 젊은 시절의 전부이다. 다정한 딸이 아닌 나는 엄마가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엄마는 백팩을 메고 양손에 한 명씩 우리 둘의 손을 잡고 그 복잡한 주말 시장 한복판을 걸었다. 한 번은 계산을 하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지갑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가방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일직선으로 찢어져 있었다. 누가 가방을 칼로 찢어서 훔쳐간 것이다. 땅거미가 지는 푸르스름한 시간에 경찰서에 도착했다. 공간이 되게 작았던 기억으로 보아 아마 가장 가까운 지구대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곳 중 하나인 남대문 시장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다시 찾을 리는 만무했다.


그 당시엔 핸드폰이랑 삐삐도 없었는데 돈 한 푼 없이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경찰이 찾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엄마는 이미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다면서 우리를 보고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아무도 안 다쳐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내게 돈을 잃어버린 불행한 날이 아니라 아무도 안 다친 다행인 날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수많은 다른 모습들의 ‘안 다쳐서 다행인 날’들을 겪고 견뎌가며 어른이 되었다.

삼십대 엄마와 어린 나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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