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맞고 콩팥에서 피나서 응급실에 입원까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슈룹'을 보면서 침 맞고 콩팥에서 피가 나서 정말 죽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떠 오른다.
2021년 여름이었다. 이제 토론토에서의 삶이 조금 안정되나 싶어서 몇 년간 마음고생에 시달려 쇠약해진 몸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침을 맞으러 간다고 했다. 이미 친구의 시댁 식구들도 효과를 좀 봤다고 해서 나도 함께 가보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침 맞는 곳 위치가 외곽에 있어서 친구 차를 타고 갔다. 캐나다에서 침술사는 한의사는 아니고 침술 의료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온타리오 주 같은 경우는 침술학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에서 3년 이상 과정 이수와 특정 시간 임상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합격 후, 의료활동을 위해서 협회에 등록해야 한다고 한다. 침술사는 내게 몸에 염증이 많아서 자주 아픈 거라고 몇 번 침을 맞으면 확실히 나아질 거라고 했다. 대신 치료 중엔 밀가루나 술 등을 금지하라고 했다.
첫 침술 치료를 받고 나서 소변이 자주 마렵긴 했지만 괜찮았다. 정말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음식도 조절하면서 일주일 후 두 번째 침을 맞으러 갔다. 침을 맞고 위에 돌덩이가 앉은 것처럼 답답했다.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해서 친구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침 맞고 한 시간 정도는 공복에 찬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 (작년 일이라서 정확하게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기억 안 난다) 집에 와서도 계속 위에 돌덩이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와중 주문한 토치된 초밥이 왔다. 못 먹고 바라보다가 잘 먹고 나아야지 하는 생각에 초밥을 몇 개 먹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다시 덮어두고 소파에 앉아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오른쪽 뱃속에서 보글보글 가스가 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초밥 때문에 체해서 온 몸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순간 너무너무 무서워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가 오고 있었다. 정말 사람 몸이 이렇게 새하얗게 질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얗게 질렸고 그 순간 먹은 걸 다 게워내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힘들이지 않아도 음식이 그냥 쏟아져 나와서 다 토해냈다. 그랬더니 혈색이 좀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옆구리가 너무 아팠다. 친구와 나는 번갈아가며 침술사에게 전화했고 침 몸살이고 장기가 조금 작아졌을 수도 있다고 하루 이틀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병원에 가도 될까 묻는 말엔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했다.
침술사의 말대로라면 간이 부었을지도 몰라서 진통제도 먹지 못하고 밤새 끙끙 앓았다. 이대로 잠이 들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팠다. 그렇게 첫날을 꼬박 아파하며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다음 날이 되고 아픔의 강도는 같았으나 다른 아픔의 종류로 바뀌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뱃속에 무거운 풍선이 같이 움직이면서 내 장기를 다 짓누르는 것 같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는 마치 전속력 달리기를 한 뒤 옆구리가 아픈 것처럼 아팠다.
매일 침술사에게 문자로 경과를 이야기했다.
"장기 근육이 정상으로 커지려고 해서 그럽니다"
"내일쯤 되면 괜찮아질 거예요. 고생한 보람이 있을 겁니다"
내일이 되어도... 그리고 내일이 되어도... 또 다른 내일이 와도 일주일간 아픈 게 변함이 없었다. 매일 아침 매니저에게 오늘 하루 더 병가를 내겠다는 말을 하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몇 번 병원에 가봐도 되냐고 침술사에게 물어봤지만, 거기서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 거란 말만 하였다.
월요일에 침을 맞고 아팠는데 일요일이 되었다. 아픔은 계속되었다. 아주 조금 나아져서 걸을 수는 있었다. 혹시 간이 아픈 것일까 봐 진통제도 없이 일주일을 꼬박 버텼다.
다시 한번 침술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아침저녁으론 옆구리가 더 무겁고 아픈 느낌입니다.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할까요?"
침술사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일단은 가보세요. 원래는 침 몸살 나시면 침으로 다시 안정시키셔야 하시는데 그렇게 안 하신다고 하셔서 몸 상태를 지켜본 건데요. 계속 아프시면 저한테 안 오실 거니깐 병원에 가보세요. 제 치료를 거부하셔서 저도 도움드릴 수 있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내일 일찍 병원에 가시길 바랍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단 한 번도 본인에게 와보라고 하지 않았다. 근데 이제 와서 뭔가 잘못되는 거 같으니까 발 빼려고 하는 게 보였다. 오란 소리도 안 해놓고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병원 간다고 하시고 저한테 온다고 절대 안 하셔서 저도 기다린 겁니다. 오신다고 하셔야 제가 정확히 도움을 드릴 수 있었고요. 저한테 오셔야 정확한 도움을 드릴 수 있는데 안 오시니 제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제 경험상 이야기한 것이고요. 친구랑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예약 안 하셨고요. 저는 오시라고 못합니다. 오신다고 해야 오시라고 할 수 있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내가 간다고 해야 오라고 할 수 있고 본인은 오라고 할 수 없다고. 소개받은 입장이라 중간에 친구가 곤란해질까 봐 병원에 가도 되냐고 물어본 내가 정말 바보 같았다.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병원에 갔어야 했다.
일요일 밤 열두 시쯤 우버를 타고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갔다.
서너 시간 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진통제를 먹어도 된다며 일단 진통제를 먹고 날이 밝으면 초음파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초음파 결과를 본 의사는 내게 심각하고 어이없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네 콩팥 옆에 10센티짜리 덩어리가 있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콩팥은 영어로 Kidney인데 생전 처음 듣는 단어라서 의사가 스펠링을 적어주었다.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응급실 의사가 아니라 이제 비뇨기과 두 명이 와서 이게 핏덩이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으니 CT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에 침을 맞았냐고 내 등을 짚어보라고 했다.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침 자국은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어디 어디에 침을 맞았는지 손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은 자기들도 처음이라고 침 때문이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CT 결과를 보자고 했다.
또 몇 시간이 지났을까, CT를 찍고 결과를 받았다. 아무래도 침으로 인해서 콩팥에서 피가 새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피가 멈췄고, 그게 덩어리가 되었다고. 시간을 두고 지켜봐서 자연적으로 없어지는지 일단 본 후에 앞으로 방향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혈압이 너무 낮으니 일단 오늘은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2인실에 혼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2인실은 혼자 이용하게 되어있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일주일간 시달린 나는 핏덩어리라는 말에 너무나 안도되었다. 그리고 나선 이내 신났다.
"해외 병원에 입원을 해보다니! 엄청 신기하다! 심지어 저 멀리 나무 사이로 호수도 보이는 호수 뷰라니!"
기다리는 동안 다른 환자에게 동냥해서 충전한 핸드폰으로 병실을 찍었다. 안도감과 응급실에서 기다리며 얻은 피곤함이 낯선 병실에서 꿀잠을 자게 했다. 진통제가 독해서 통증도 많이 못 느끼게 해 줬다.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버텨준 내 몸이 너무 기특하고 감사했다.
비뇨기과 전문의 의사는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다른 의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의사들이 보는 저널에 글을 써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다. 또한 침술사에게 전화해서 내 피부 두께랑 침 두께 등을 비교하면서 앞으로 침놓을 때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주의도 주었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났을까? 모든 핏덩어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헬스 카드가 있던 나는 이 모든 병원비가 공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