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않고 일희일비하기
나는 스포츠에 크게 관심이 없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온 나라가 함께 들썩일 때만 잠깐 함께 들썩할 뿐이다.
한국에 있을 때 야구장에 몇 번 가서 정을 붙이려고 해도 잘 안 됐다. 주변에 온통 토론토에 있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블루제이스 팬인데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애국심이 바탕이 되는 경기가 아닌 이상 사실 누가 이겨도 상관없었다.
그때만 해도 야구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였다.
2023년 여름,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세계를 살짝 흔들었다. 정유미가 오타니를 보러 뉴욕까지 가는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몇 개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다 보니, 내 피드엔 온통 오타니만 쏟아졌다.
마침 에인절스 소속이던 오타니가 블루제이스와의 경기를 위해 곧 토론토로 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경기 관람은 한국과 다르게 토론토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니 겸사겸사 경기 티켓을 끊었다.
기왕 가는 거 제대로 즐기기 위해 블루제이스 유니폼도 샀다. 딱히 좋아하는 선수도 없고, 류현진도 곧 계약 만료였기 때문에 아무 등번호가 없는 키즈 유니폼으로 구입했다.
경기가 열리는 로저스 센터는 CN타워 바로 옆, 토론토의 완전 중심에 위치해 있다. 친구가 예매한 자리는 CN타워를 등지는 자리라 조금 아쉬웠지만, 실시간으로 붉게 물드는 노을을 감상하기엔 최적이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오타니 경기를 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타니가 나올 때마다 주변은 다른 상대팀 선수들과는 다르게 웅성웅성하며 연신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하늘 끝에 있는 자리에서 바라본 그였지만 덩치가 남다르게 크다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첫 타석에 홈런까지 쳤다.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블루제이스 응원석에 앉아 남몰래 오타니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경기는 블루제이스의 승이었다. 홈런을 칠 때마다 휘황찬란한 조명들과 음악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홈경기에서 블루제이스가 이기다 보니 경기 후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Queen의 Don't Stop Me Now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야구에 대해 잘 알지는 모르지만, 오타니의 경기를 직관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설레었다. 집에 도착해서 오타니의 다음날 경기표를 구매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낮 경기라 너무 더울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리고 나선 굉장히 후회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에 오면 또 꼭 보러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그는 다저스로 가서 토론토로 경기를 하러 오지 않았다.
그다음 달엔 회사 엔지니어링 팀 이벤트로 로져스 센터의 outfield district 구역에서 야구를 보게 되었다. 해당 구역은 자리가 따로 없고 스탠딩 여러 가지 펍 같은 공간들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경기장 쪽에 다 모여 있어서 결국 경기는 거의 펍에 있는 TV로 감상하는 수준이었다. 집에 갈 때 인파가 몰리는 것도 싫고, 야구엔 관심도 없어서 일찍 자리를 떴다.
그때까지도 그냥 나는 오타니의 경기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5년 시월의 마지막주,
나는 블루제이스에 과몰입해버렸다.
종종 호숫가 조깅을 하는데 호수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는 스포츠 펍들이 뜨문뜨문 적지 않게 있다. 금요일 저녁, 그날따라 그 거리는 어느 때보다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펍 안과 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깅을 한 후라 도파민 덕에 에너지가 넘쳤던 나는, 한번 펍에 가볼까 생각을 했다. 그러다 또 술 마셔서 뭐 하나 하는 생각에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씻고 누워서 쓰레드를 좀 보다 보니 오늘이 월드시리즈에 올라갈지 결정 나는 마지막 경기였다고 한다. 역전승으로 블루제이스가 이겨서 다저스와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32년 만의 결승전 진출에 토론토는 도시 전체가 흥분과 설렘으로 휩싸였다.
문득 <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내가 유일하게 몇 번을 돌려본 미드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캐네디언인 로빈을 위해 캐나다 테마 바에 로빈을 데려간 에피소드였다. 물론 그곳엔 하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캐나다 냄새 물씬 나는 스포츠 펍에서 함께 블루제이스를 응원하는 것은 내가 이곳에서 지금 누릴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 같단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미디어에선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연신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약간 한일전의 분위기와 결은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마침 유니폼도 있고, 동네에 널린 게 스포츠 펍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총 7 경기 중 금요일에 열리는 첫 경기를 보러 동네 언니들과 근처 펍에 갔다. 저녁 8시 경기지만 나름 서둘러 7시에 펍에 도착했지만, 이미 만석이라 자리가 없었다. 몇 군데를 돌아서 겨우 한 군데에 자리할 수 있었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고 모든 사람들이 블루제이스를 응원했다. 결과는 11대 4로 블루제이스의 대승이었다. 펍은 내내 분위기가 뜨겁고 즐거웠다. 점수가 날 땐 마음껏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언제 이렇게 소리를 질러봤나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오랜만이었다. 다음 날인 토요일엔 이미 일정이 있어서 우린 월요일에 다시 또 펍에 와서 응원을 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블루제이스를 응원하긴 했지만, 이겨도 그만 안 이겨도 그만이었다. 월요일에는 저녁 6시 반에 가서 미리 자리를 맡았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이미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연장전을 한두 회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하게 계속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갔다. 내 일행들과 펍에 몇몇 사람들은 현생을 살기 위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연장전이 한 회씩 더 진행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펍 안에 모두가 점점 눈은 반쯤 감기고 목소리는 갈라져갔다. 하지만 오기가 생겨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조금 찝찝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가면 질 것 같아서였다.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18회로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긴 경기가 끝났다. 블루제이스가 졌다. 그렇게 늦게까지 있었는데 이기지 못한 게 좀 짜증도 나고 허무했다. 그런데 아마 이때부터 나의 블루제이스 과몰입이 시작된 것 같다.
펍에 8시간이나 앉아 응원한 여파로 그 주는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친구와 마지막 경기(7번째 경기)를 펍에서 보기로 하고 그 사이 진행 되는 경기는 집에서 시청을 했다.
아무리 봐도 블루제이스는 약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저스가 몇몇만 특출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블루제이스에 과몰입을 하면서 그렇게 느꼈던 건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즐기려고, 경험해 보려고 간 응원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는 토요일에 진행이 되었다. 친구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혼자 스포츠펍에 갔다. 지난번 펍에 있는 바테이블에서 혼자 앉아 경기를 보는 분들을 보고 그것도 한 번 해보고 싶었기때문이다. 경기 두 시간 전인 6시부터 온 스포츠펍이 만석이었다. 빈자리를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처음 갔던 펍에 다시 갔다. 운 좋게 막 바에 하나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그 어느 날보다 재미있는 응원이 시작되었다.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응원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도 연장까지 갔지만, 결국 월드시리즈 챔피언은 다저스가 2년 연속 가져갔다.
어떤 사람은 정말 나라가 잃은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말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아쉬웠던 장면을 이야기하며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아저씨는 너무나도 슬픈 얼굴로 내게 같이 응원해서 즐거웠다며 내년에 또 보자고 했다.
모두에게 슬프고 아쉬운 결과였지만,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상하게 그 펍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야구를 응원하며 엄청난 자유로움을 느꼈다.
마음껏 일희일비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표현 중에 “김칫국 마시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우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마음껏 순간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입장에선 마음껏 일희일비할 수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기쁠 경우에 우리가 마음껏 기뻐해야 경기 흐름도 좋아지고, 선수들 사기도 올라가는 것 아닐까?
물론 슬픔을 너무 절망적이게 받아들이자는 건 아니다.
슬플 땐 “할 수 있다”며 응원하며 또 희망을 놓지 않는 게 나는 좋았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일희일비한다면 “설치더니 꼴좋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옛말엔 다 이유가 있을 거다. 너무 순간순간 좋아하고 슬퍼하다가 결국 다음 기회를 놓치거나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어떤 면에선 다시 올지 모르는 그 좋고 행복했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냥 남들이 뭐라고 해도.
순간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짧고 굵게 즐기고.
그리고 계속 가던 길을 가고 싶다.
축구에서 골을 넣고 세리머니 없이 바로 다시 경기를 진행한다면 조금 슬프지 않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을 미래의 알 수 없는 끝 때문에 무작정 억누르고 싶진 않다.
너무 메마른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