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3일간 46KM, 7만4천보 퀘벡 극기훈련

그날의 우리는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

by Hiraeth

모브닝의 <그날의 우리는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는 내가 즐겨 듣는 노래 중 하나다.

모든 가사가 곳곳이 와닿고 주옥같지만,


“너도 알잖아 온종일 빛나는 우리의 하루가 언제까지나 오늘과 같이 두근거릴 수만은 없다는 거”


이 구절은 마치 나의 퀘벡시티 여행을 대변하는 구절처럼 들린다.


다시 와도 이번만큼 즐길 자신이 없을 만큼, 정말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시간이 끝나고, 다시 평범한 내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괜히 더 서글프게 느껴졌다.


혼자 마무리했다면 너무나도 울적했을 여행 막바지에, 딱 맞는 그 타이밍에 친구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의 빡세고 즐거운 3일간의 동행이자 극기훈련이 시작되었다.




2025년 10월 11일 토요일, 퀘벡 12일 차.


오전 11시쯤, 캘거리에서 친구 부부가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놓고 집 근처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 계획도 없었던 우리는 빵을 먹으며 어디로 갈지 의논했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오기도 하니 푸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내가 첫날에 갔던 올드퀘벡 가는 길에 있던 그 푸틴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초콜릿 가게에 들러 초콜릿과 마카롱을 샀다.


밥을 먹으러 가면서 먹을 걸 사는 게 뭔가 웃기고 재미있었다. 빵을 먹은 덕분에 배가 막 고프지는 않아서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이번 주 주말 동안 근처에서 애니메이션 이벤트가 열리나 보다. 코스튬을을 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식당에 많았다. 여럿이 여행하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시킬 수 있어서 좋다. 간단히 푸틴을 먹고 올드퀘벡으로 향했다.


IMG_3321.JPG 우리의 첫번째 푸틴


오늘은 저녁 6시에 식당을 예약해 두기도 했고, 첫날이기도 해서 대충 둘러보기로 했다. 사실 극성수기 토요일이라 사람에 치여 천천히 둘러보긴 좀 어려웠기도 하다. 거의 인파에 밀려서 끌려다니는 수준이었다.


“사람 너무 많은데 오늘 어디 어디 볼지 대충 답사처럼 보고, 내일 새벽부터 오는 게 어때?”


다행히 친구들도 나만큼 붐비는 걸 싫어해서 내일 아침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근처를 대충 둘러보며 커피 한잔을 또 마셨다.


002.png 엄청난 인파


단풍이 예쁜 공원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필카를 꺼냈다. 사진을 찍는 순간, 카메라가 꺼져버렸다. 액정도 나갈걸 보니 배터리가 완전히 닳은 것 같았다. 근데 하필… 렌즈가 밖으로 나온 상태로 멈춰버렸다. 그때부터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게도 온 신경이 카메라에 쏠려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래된 카메라라 렌즈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보이는 마트마다 들어갔지만 카메라에 맞는 건전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 카메라 배터리는 다음날 결국 엄청난 멍청 비용을 유발한다)


IMG_4227.jpg 카메라와의 사투 애처러운 뒷모습


어제까진 손이 시릴정도로 추웠는데, 오늘은 또 더웠다. 코드까지 다 챙겨 나갔는데, 한낮엔 반팔을 입어도 될 날씨였다. 밤비행기를 8시간가량 타고 온 친구부부도 갑자기 더운 날씨에 걷다 보니 조금 지쳐 보였다. 사실 나와 비교할 수도 없는 체력의 그들인데, 비행기 이동 덕에 오늘은 좀 비빌만한 체력이 되었다.


친구가 가고 싶다던 노트르담 대성당에 들어갔는데 운 좋게 예배를 보고 있었다. 성당 가득 초 냄새가 났다. 뭔가 따뜻하고 좋았다. 엄마와 예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엄마는 성당마다 들러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괜스레 그때 생각이 나기도 했다.


003.png 그냥 길과 성당 안


크리스마스 상점에 가서 앉아있는 모습이 귀여운 오리 기념품도 샀다. 이름은 “퀘뷁”이다. 여성스러운 편이 절대 아닌데, 가끔 이런 걸 살 때가 있다.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취향이다.


IMG_3921.JPG 앉아있을 때 귀여운 퀘뷁이


우리는 6시 딱 맞춰 식당에 도착했다. 인당 50불짜리 추천 메뉴들이 나오는 코스를 시켰다. 양도 많고 퀄리티도 좋은 음식들이 나왔다. 순간 “이게 50불이 맞나? 우리가 잘못들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디저트는 추가로 시켜야 했는데 또 내가… 시켜버렸다. 친구들은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내게 뭐라고 하진 않았다. 착하다. 속으로 욕을 했을 수도.. 근데 다행히도 디저트가 진짜 맛있었다. 사실 다른 음식들도 다 좋았는데, 디저트가 진짜 맛있었다. 맛없었으면 미안할뻔했는데 조금 당당해질 수 있었다.


004.png 맛있었던 저녁 - 왼쪽이 디저트


배부르게 먹고 식당을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까 그 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일 기상시간은 5시 45분.

우린 서둘러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살짝 답사만 한 건데 21,840 보나 걸었다. 총 13.5KM

그리고 오늘이 3일 중 가장 적게 걸은 날이다.


이 날의 기록을 적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답사 의미로 목적지에 가려고 서둘러서 친구들이 충분히 구석구석을 못 본 건 아닐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초콜릿가게

https://maps.app.goo.gl/UnXuo4UcWrcncoh86


저녁 먹은 식당

https://maps.app.goo.gl/D5yb6WCeydkj8Bc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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