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 내가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떠난 이유 2

2025년 요기조깅 동계훈련

by Hiraeth

이 글은 #020 - 내가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떠난 이유 1 (글 읽어보기) 에 이어지는 두 번째 글입니다.



이번 여행은 목적은 먹고, 쉬고, 노는 것!

먹고 쉬는 이야기는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유유상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내가 극과 극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활동량이다. 난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있거나 잠을 잔다. 낮잠을 자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했나 싶을 정도로 낮잠은 나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농담 삼아 내게 신생아보다 더 잔다고 할 정도다.


반면, 이 친구들은 누워있지를 않는다. 생활에서 쓰이는 활동량도 많을 뿐만 아니라, 하이킹을 즐긴다. 30분을 달리기 위해 내게 세 달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친구들은 처음에 나와 15분을 함께 달려본 후 바로 30분이 거뜬했다. 10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2박 3일 백패킹을 다니는..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들이다.


친구들이 토론토에서 캘거리로 이주한 후, 몇 년이 지난 2024년.

한 여름이던 8월 초에 처음으로 그들을 방문했다.


그 당시 나는 달리기를 막 시작하려고 런데이를 한참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질체력의 대명사였다. 어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내겐 조금 버거운 시절이었다. 배려심 많은 친구들은 나를 위해 가장 쉬운 코스로 밴프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난 삼아 나는 “이건 여행이 아니라, 하계훈련이다”라고 이야기 농담을 했다.


그 이후 우리는 농담처럼 함께 여행하는 걸 “훈련”이라고 이야기했다.


아.. 어쩌면 실제로 훈련일지 모른다.


2025년 봄에 저녁 먹고 잠깐 산책한 게 10km였고,

여름에도 쉴 새 없이 다니고 함께 러닝 하고,

가을엔 퀘벡시티를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삼만보 가까이씩 걸었으니…


2024년 러닝에 입문하면서 장난 삼아 “요기조깅”이라는 러닝크루 계정을 인스타에 만들었다.

말 그대로 요기조기에서 뛰어야 하므로 같이 뛰는 건 안된다.

(혹시 관심이 있다면, 요기조깅 바로가기 )

가입은 그냥 계정을 팔로우하면 된다. 그리고 이 친구들 역시 우리 크루 멤버들이다.


이번 겨울도 농담처럼 우린 “요기조깅 동계훈련”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는 크게 세 가지 훈련을 잡았다.

하이킹, 튜빙 그리고 레이크루이스.


이번 훈련 스케줄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그리고 나의 예측 불가능한 한 달에 한 번, 그날이다.


겨울 하이킹은 날씨가 너무 추워도 위험하고, 갑자기 따뜻해져도 눈사태로 위험하다고 한다. 또한 나의 그날도 날씨만큼이나 위험요소였다. 생리통과 화장실이 문제였다. 영하 30도를 육박하는 첫 주말을 함께 하며, 우리는 대충 유연한 다음 주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날씨요정이 도와준 덕에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


우리의 첫 동계훈련…

아니, 어쩌면 나에게만 “훈련”



## 로키엔 역시 하이킹


이 하이킹 코스는 사실, 올여름 가려고 주차까지 했다가 그냥 돌아서야 했던 코스다. 이유는 곰이 출몰해서 그날 하이킹 코스를 닫았기 때문이다.


IMG_1116.JPG 아쉽게 돌아와야했던 하이킹 코스 주차장 뷰 - 맞아요 이사통에 나온 오로라 거기
collage.png 2025년 여름 호수에서 만난 사진 찍을 줄 아는 땅다람쥐


아침 11시쯤 주차를 완료하고, 하이킹을 시작했다. 친구들이 하이킹 초보 시절 왕복 한 시간 반씩 걸렸던 코스라고 한다. 11월엔 왕복 45분씩 걸렸다고..


눈이 가득 쌓였기 때문에 우린 아이젠을 끼고, 나는 등산스틱을 이용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괴물 같은 친구들은 등산스틱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는 길에 눈이 가득한 밴프가 너무 예뻐서 살짝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등산로 입구부터 이미 장관이었다.


00_출발.png 하이킹 진입로에서의 나, 산행 중인 친구와 나


한 발 한 발 내딜때마다 사진을 찍느냐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주차장에선 그렇게 춥더니,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다 보니 몸이 데워지기 시작했다. 베테랑인 친구들 덕에 옷을 적절하게 입고 와서 지퍼를 열거나 바람막이를 벗으며 몸에 땀이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친구가 나랑 키가 비슷해서 친구 등산복들을 빌리고 아이젠도 쓸 수 있었다.


01_산행중.png 산행 중인 나와, 내가 만든 오리


몇 년 전부터 느낀 거지만, 나는 눈을 좋아한다. 눈이 오는 날엔 어디서 힘이 나는 건지 집에 누워있다가도 일어나서 산책을 갈 정도다. 그렇게 좋아하는 하얀 눈이 지천에 깔려있으니, 덩달아 내 눈도 즐거워져 힘든 줄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 정확히는 위로 올라갔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 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내 안의 도파민을 폭발하게 했다.


한 시간 반을 올라가니 나무사이로 정상이 보였다.


미쳤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미쳤다”라는 말로 밖에 이 장면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초라한 표현력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정상에 다다랐을 때 내 눈앞에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생생하게 펼쳐질 정도의 순간이었다. 한 시간 반에 이 정도 절경이라니, 가성비 최고다.


02_정상으로.png 정상으로 가는 나무 입구, 정상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뷰
03_정상에서.jpg 가성비 최고의 미친 정상에서의 비정상인 나


이전 글들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나는 화장실병이 있다. 이 하이킹 코스의 장점은 정상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등산로와 다르게 화장실로 가는 길은 눈이 잔뜩 쌓여있었다. 안 가도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화장실에 들렀다 하산할 생각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놀다가 믿고 있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높이만큼 지붕에 눈이 쌓인 초록색 화장실이 보였다. 눈 길을 헤치며 문 앞에 다다랐는데… 쌓인 눈 때문에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틈새로 보이는 화장실 안도 누가 잠깐 문을 열었을 때 눈이 쏟아졌는지 눈에 쌓여 있었다. 약간 불안함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화장실 때문에 오전 내내 물도 잘 안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먹은 게 없는 걸 믿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04_화장실.png 화장실을 향하여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조금 힘이 들었다. 젊을 땐 올라가는 게 힘들지 내려가는 게 뭐가 힘드냐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고 무릎이 약해지고 나니, 어른들 말은 틀린 게 없다는 걸 도가니 저리게 느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고 노느냐고 3시가 되어서야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민을 보니 총 3시간 40분 동안 하이킹을 했다. 실제로 오르고 내린 시간은 3시간이 좀 안될 것 같다.


06_집으로.png


나는 화장실병 때문에 하루 종일 초콜릿 조금 외엔 먹은 게 없었다. 친구들 역시 아침을 먹은 지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 셋다 허기짐이 몰려왔다. 배고프다고 가까운 데 가서 아무거나 먹고 싶지는 않았다. 내 영혼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우리는 고픈 배를 쥐어 잡고, 캘거리로 돌아와 저녁 5시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따뜻한 짬뽕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땐, 극락이 따로 없었다.


아무래도 하이킹의 끝은, 끝나고 먹는 맛있는 한 끼인 것 같다.



## 겨울 로키엔 역시 스피드


어제의 산행을 끝내고, 2025년 마지막 날이 밝기도 전에 우리는 온몸으로 로키의 속도감을 느끼러 집을 나섰다. 튜빙은 내가 캘거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함께 하기로 한 액티비티였다. 온라인으로 미리 밴프 근처 스키장 표를 사두었다. 오전과 오후 두 타임이 있었는데, 우리는 9시에 시작해서 12시에 끝나는 오전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7시에 집을 나섰다. 덕분에 밴프로 가는 길에 해가 뜨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며 갈 수 있었다. 밴프에 세 번이나 왔었지만, 다 여름에 와서 해 뜨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보았다.


9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스키장에 도착했다. 표를 잠바에 붙이고, 튜빙을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해가 뜨면서 산봉우리가 황금빛을 띠기 시작한 게 이뻐서 조금 여유를 부렸다. (이 여유는 나중에 튜빙을 한 번 더 못 타서 속상한 시간이 된다.)


00_튜빙도착.png 튜빙장과 튜빙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산


생각보다 큰 규모에 살짝 겁이 났지만, 일단 한번 타보니 정말 숨 막히게 재미있었다. 내려가는 시간이 20초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너무 아쉽기만 했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와 결국 세 시간 동안 5번밖에 타지 못했다. 마지막엔 한번 더 타려고 그 무거운 튜빙을 들고 냅다 달렸지만 이미 기다리는 줄이 닫힌 후였다.


01_튜빙중.png 커다란 튜빙, 튜빙 타러 올라가는 길, 튜빙타는 나


너무너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밴프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밴프에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있는데, 나 같은 백수에겐 가성비 좋은 “한끼”라는 한국 컵밥집이 최고다. 간단하게 핫도그를 먹고 근처에 무료 핫초코를 받으러 산책 겸 걸었다. 무거운 튜빙을 들고 스피드를 즐길 때는 몰랐던 추위가 뼛속까지 느껴졌다.


02_집으로.png 밴프 온 것 티 내는 나, 집으로 가는 길


그렇게 튜빙이 내려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2025년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편엔 2026년의 동계훈련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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