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요기조깅 동계훈련
이 글은 #020, #021 - 내가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떠난 이유 1,2에 이어지는 세 번째 글입니다.
#020 - 내가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떠난 이유 1 보러 가기
#021 - 내가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떠난 이유 2 보러 가기
새해 첫날은 아침 식사 후 가볍게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꽁꽁 얼은 캘거리 동네 산책을 40분을 했다. 역시 동계훈련에는 얼죽아다. (아쉽게도 영상밖엔 없어 사진을 공유할 수가 없다.)
1월 2일, 진짜 새해 첫 훈련이 이루어졌다.
밴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두 곳, 레이크루이스와 페이토 호수이다.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생리 예정일에 맞춰서 잡은 일정이었다.
레이크루이스는 2016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페이토 호수는 2024년 여름에 이 친구들과 함께 갔었다. 레이크루이스는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날씨가 흐려 해 뜨는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흰 눈으로 길들은 여전히 예뻤다.
그런데 하나 문제가 생겼다. 서둘러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레이크루이스로 들어가는 입구가 스키장 가는 차들로 인해 꽉 막혀있었다. 꽉 막힌 도로를 보니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화장실이 급해졌다. 20분쯤 흘렀을까? 여전히 차는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친구들도 내가 막힌 도로를 보면 화장실병이 심각해지는 걸 알고 있기에 같이 긴장한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아니 더 미안해졌다. 참아봤지만, 결국 나는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때 운전하던 친구가 반대쪽 방향 입구로 한번 가보자고 아이디어를 내고 그쪽으로 향했다. 반대방향은 스키장과 연결되어있지 않아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 지금 이 글을 쓰는데, 다시 그 고통과 압박감이 오는 것 같다.
레이크루이스는 푸릇푸릇했던 10년 전 여름과 달리 꽁꽁 얼은 호수 위에 눈이 가득 쌓인 겨울의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반겼는지, 레이크루이스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호수 반대편에 있는 폭포까지 호수를 가로질러 걸었다. 가는 내내 같은 풍경이었지만, 가는 내내 감탄했다. 살짝씩 내리는 눈은 풍경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흐린 날씨 덕분에 세상이 온통 흑과 백이었다. 수묵화 속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천천히 놀아 가며 호수를 걸었더니 총 4km였다. 아쉬운 마음에 레이크루이스에서 출발하는 페어뷰 룩아웃(Fairview Lookout) 트레킹을 한 후 페이토 레이크로 이동하기로 했다. 제미나이에 물어보니 왕복 1~2시간 내외로 가족단위에게 적합하다길래 만만하게 보고 오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갔는데도 한 시간 정도 걸렸으나 극도의 오르막이었다… 제미나이는 왜.. 가족단위 라고 한 걸까? 어떤 가족들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걸까..
하지만, 올라가는 내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를 사로잡았다. 소복이 눈이 쌓인 유독 키가 큰 나무들이 가는 길 내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떤 모습을 정상에서 보여줄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나무들로 꼭꼭 숨기고 있었다.
만만하게 보고 아이젠을 끼고 오지 않은 바람에 더 조심하며 30분쯤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시원하게 뚫린 시야에 호수와 호텔이 주변의 산, 나무가 어우러져 한눈에 보였다. 여행, 콘텐츠 등을 통해서 몇 번이고 본 익숙한 호텔이었지만 새로운 방향에서 내려다보니 충분히 색다르고 감동적이었다.
근처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페이토 호수로 향했다. 호수로 가는 길은 눈이 110센티나 쌓여있었다. 며칠 전까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책로를 닫았다가 어제부터 다시 오픈했다고 한다.
다 똑같은 나무, 비슷한 풍경일 줄 알았는데 달랐다. 산책로에는 초록잎을 지닌 나무들이 가득했다. 페어뷰 룩아웃 코스에서 이미 극한의 오르막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까? 페이토 호수로 올라가는 건 너무 수월했다. 아, 물론 아이젠을 착용한 게 한몫하기도 했다.
겨울에 보는 페이토 호수는 여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사방이 뻥 뚫려 뭔가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보우 호수에 잠깐 들렀다. 밴프에는 많은 호수와 산이 있지만, 각각 다른 느낌과 풍경을 선사한다. 보우 호수에 다다랐을 때엔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정말 그 큰 호수에 우리 밖에 없었다. 이번 동계훈련은 타이밍이 기가 막힌 거 같다.
이렇게 야외 동계훈련이 끝나는 줄 알았다.
멋진 상고대가 캘거리를 전체를 하얗게 물들인 것을 보기 전까지는.
긴 연말의 휴가가 끝나고 친구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연휴의 마지막 주말이자 2026년 첫 주말이 왔다. 우리는 브라질리언 고기 뷔페에 가서 슬쩍 건드리면 토할 정도로 저녁을 먹고 오락실에 가서 소화를 시켰다.
식당에 오고 가는 내내 나무에 뻗은 눈의 가지들이 캘거리를 하얗게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겨울왕국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도 캘거리에 몇 년째 살았지만, 이번이 유독 예쁘다며 내내 감탄했다. 이대로 집에서 하루를 마감하기 너무 아까운 풍경이었다.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 집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옷을 겹겹이 껴입었다.
이 날은 달도 유독 크고 밝았다. 따뜻한 주황 가로등 불빛은 이 밤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산책을 하다 만난 공원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하늘을 보고 누웠다. 눈이 살짝 단단해져서 적당히 폭신한 침대 매트리스처럼 편했다. 등에 있는 핫팩은 따뜻했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감쌌다. 커다랗게 빛나는 달, 반짝반짝 빛나는 별, 온통 하얀 나무들 그리고 나를 찍어주려는 친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살면서 행복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는 게 얼마나 될까? 이 날 누워서 하늘을 본 그 순간은 내게 너무 생소한 감정을 주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잊을 수 없는 감정이다.
우리는 왕복 2km 정도를 한 시간 반동안 산책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인후통, 콧물과 함께 눈을 떴다.
결국 나의 동계훈련은 감기엔딩이었지만, 훈련의 끝에 감기가 찾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설명할 수도 보이지도 않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하지만, 명확히 설명하고 단정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함께한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눈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캐나다를 떠나 다시 한국에서의 삶을 선택한다면,
아마 나는 이 친구들과 “훈련”을 핑계로 좋은 시간을 지금처럼 쉽게 보낼 수 없을 것이다.
10대 시절을 늘 함께 했던 오랜 친구들,
20대 초반 하루 종일 붙어 다녔던 대학 친구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친구들,
그리고 첫 직장에서 만난 든든한 동료들.
그때그때 처해진 환경에 따라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환경이 변하고 나이가 들면 또 물리적으로 멀어진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물리적인 거리와 상황은 변해간다.
하지만 결국, 좋은 인연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남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인연을 붙잡기 위해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훈련은,
TFSA 혜택만큼이나 캐나다를 떠나기 아쉬운 이유 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다른 환경에 놓인 우리의 미래가 기대되고 궁금하다.
어쨌든 결론은,
지금까지 캘거리 여행기는 여행기를 가장한 캐나다에서의 우정 이야기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