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헤비 엔딩(heavy ending) - 12일간의 먹방
겨울의 토론토 공항은 따뜻한 멕시코나 미국을 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연말은 성수기 중의 성수기이다.
(캐나다는 연말에 한주정도 일을 안 하는 회사가 많다.)
보법이 다른 나는,
2025년 연말 시즌에
치솟은 비행기 값을 백수의 손으로 덜덜 떨며 지불하고,
토론토보다 춥고 건조한 영하 30도의 캘거리로 향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2026년 1월 말 토론토는 눈도 많이 오고 춥다.)
나이가 들 수록 “진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고 한다.
운 좋게도 내게는 토론토에서 만난 진짜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은 부부인데, 토론토에서 만나 몇 년 전 캘거리로 이사를 갔다.
2025년 봄,
그 친구들이 토론토로 놀러 왔다.
2025년 여름,
일에 지친 내가 캘거리로 놀러 가서 재택근무를 했다.
2025년 가을,
백수가 된 나와 함께 퀘벡시티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계획을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사계절 중 세 번의 계절을 함께 보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계절을 함께 완성해 보자!”
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침 비행기였는데, 토론토에 심상치 않은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한 시간 남짓 딜레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포터항공은 나를 캘거리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그 뒤 다른 항공사 항공 편들은 줄줄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포터 만세!)
이번 겨울 여행의 컨셉은 명확했다.
같이 먹고, 쉬고, 놀기.
퀘벡시티를 다녀온 후, 터진 입은 캘거리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연말의 즐거움은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는 것을.
우린 만나자마자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장을 본 것 같다.
살 것이 있어서.. 또는 까먹고 안 산 것이 있어서.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는 날엔 어김없이 군고구마를 사 먹었다. 캘거리에서 머문 첫 주는 거의 1일 1 군고구마를 한 것 같다. 토론토로 돌아온 지금, 군고구마와 김치가 가장 먹고 싶다.
캘거리에 도착한 첫날, 늦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핑계로 초밥세트와 피자, 토론토에서 온 극강의 단맛 craig's cookies, 그리고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와 몽쉘을 저녁 한 끼에 해결했다. 그리고 캘거리에서 마지막 날도 기념으로 똑같이 같은 피잣집에서 다른 종류의 피자와 초밥집에서 같은 초밥 세트를 시켜 먹으며 마무리했다.
소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러닝머신을 뛰기도 했다.
(아, 한번 뛰었다.)
세명 중 두 명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역시 김치! 김장을 했다.
보쌈을 먹지 않으면 김장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김장을 마친 후 보쌈, 두부와 군고구마를 먹었다. 남은 배추를 활용하기 위해 친구들은 감자탕, 밀푀유나베를 만들었다. 새로 담근 김치가 미친듯이 맛있어서 김치를 먹기 위해 밤 9시에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친구가 만든 돼지고기가 넉넉히 들은 일본식 매운 카레 역시 김치와 딱이었다.
일본 친구 덕에 좋아하는 일본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삼겹살이 넉넉하게 들어간 오꼬노미야끼, 야끼소바, 먹어도 먹어도 질릴 수 없는 나폴리탄 파스타.
모든 끼니 뒤엔 디저트가 대기 중이었다. 디저트의 대표 도넛 한 상자, 달디단 도넛에 피스타치오크림까지 발라 먹었다. 그 외에 두바이 초콜릿, 부드러워서 한번 뜯으면 멈출 수 없던 육포, 카이막, 각종 스낵들은 덤이다. 캘거리에서 꽤 유명한 모노그램이란 커피숍에 가서 커피와 아몬드 크로와상도 먹었다. 사실 크로와상에 끈적한 잼 같은 게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입맛이 변한건지 거기가 맛있었던 건지 엄청 맛있게 먹었다. 강추위에 스타벅스 녹차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새해 첫 산책을 하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채웠다.
의미 있는 식사들도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은 일본인이다. 일본에서는 12월 31일 밤에 토시코시 소바를 먹는다고 하는데, 묵은 해의 액운을 끊고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궁금해서 미리 찾아봤는데 해를 넘기기 전에 모두 먹어야 하며, 남기면 새해에 재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다는 소리에 그날 하루 종일 다 못 먹을까 봐 걱정을 했다. 다행히 다 먹었다! 그리고 1월 1일은 한국 전통에 따라 떡국을 먹었다. 만두는 거들뿐.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오가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트렌드도 놓칠 수 없었다.
릴스에서 본 대로 그릭요거트에 빠다코코넛을 넣어 치즈케이크 맛을 구현해 보았다. 맛있었고, 진짜 약간 치즈케이크 맛이 났다. 덕분에 빠다코코넛도 오랜만에 먹었다. 한국을 휩쓸고 있는 두바이쫀득쿠키도 만들어 먹었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토론토에서부터 릴스를 보내며 꼬셨다. 덕분에 두쫀쿠를 매 끼니 디저트로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다.
주머니를 비우지만, 영혼을 채우는 맛있는 외식들도 있었다.
두쫀쿠 재료를 사기 위해 들른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한 터키음식점은 정말 맛집이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터키 여행 갔을 때도 모든 음식을 다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뭔가 간이 우리나라 입맛이랑 딱 맞나 보다. 하이킹을 다녀와서 지친 몸으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탕수육, 그리고 짬뽕을 거하게 먹었다. 역시 입맛 도는 데에는 운동만 한 게 없다. 튜빙 후엔 밴프에 있는 “한끼”에 가서 설탕과 케첩을 가득 묻힌 핫도그를 먹기도 했다. 관광지라 물가가 비싼 편인데 가성비 최고다. 구운 파인애플이 맛있는 브라질식 고기 무한리필집에 가서는 너무 많이 먹은 바람에 진짜 토할뻔했다. 캘거리의 파머스마켓은 깔끔했고, 맛있는 음식점들도 많았다. 그래서 오후엔 많은 음식들이 이미 품절이었다. 그래도 맛있는 피자와 건강한 주스를 마실 수 있었다.
캘거리에 머무는 12일간,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집밥과 외식의 경계를 오가며 먹고 또 먹었다.
정말 위아더월드(We Are the World)다.
토론토에 와서 몸무게를 쟀다.
20년 만에 처음 보는 숫자였다.
20년 전, 스무 살.
대학 때문에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시골과 다르게 피자, 햄버거 종류도 다양하고 먹을 것 천지였다.
그중 미스터피자와 빕스에 빠져서 3개월 만에 10kg 가까이 찐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땐 젊어서 노력하지 않아도 살이 6개월 사이에 자연스레 빠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비슷한 몸무게를 20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
그리고 20년 만에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다.
결국 나의 2025년은 “헤비앤딩”(heavy ending)으로 끝났다.
그래도 매 끼니 행복하고 즐겁게 먹어서 후회는 없다.
먹는 이야기는 이제 접고, 다음 편에선 튜빙, 하이킹 등등 캘거리에서 노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다음 편에 계속!
* 메인 사진은 이번 여행 중 하이킹 가서 찍은 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