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를 줄이다가 삶을 되찾았다
얼마 전에 토론토에서 사는 것에 대해 인터뷰하는 릴스가 알고리즘을 타고 내게 왔다.
인터뷰이는 브라질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그녀의 답변은 이랬다.
토론토에서 사는 것은 live(살다)가 아니라 survive(살아남는다)라는 것.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캐내디언 친구들과도 늘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하곤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직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었고, 정신적으로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아, 그렇다고 내 마지막 직장이 최악이라던가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냥 밥벌이에 대한 고민과 여러 가지 내 안의 생각들이 서로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ㅅㅂ비용”은 늘 곁에서 날 지켜주었다.
귀찮거나 지쳐서 시켜 먹는 배달음식이 대표적이다.
백수가 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이력서를 고치는 것도 (여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지만)
이력서를 내는 것도
새로운 일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생활비 절약이었다.
가계부를 쓴 지 3년이 넘어가는데,
내게 가장 큰 지출은 단연 집세, 식비, 운동이었다.
현재 집은 15평 정도 되는 원베드룸(거실과 방하나)으로 2015년 12월부터 살았다. 월세는 매년 1~2프로 정도 올라서 올해는 1200불 조금 넘는다. 방세를 줄일 수는 없었다. 현재 1200불이면 남이 사는 아파트에 방한칸 셰어하는 가격이다.
허리디스크가 심해서 재채기를 하다가, 걷다가, 기지개를 켜다가도 디스크가 터졌다. 혼자 운동을 하다간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아 시작한 PT는 한 달에 1000불이 조금 넘었다. 그래도 1년 반을 꾸준히 한 덕에, 달리기도 할 수 있었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백수가 PT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현재는 월 70불 정도의 집 앞 헬스장에 다닌다.
혼자 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AI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농담 삼아 친구들에게 채찍PT를 받는다고 한다.(*채찍PT: chatGPT에 도움 받는 걸 농담 삼아 이렇게 표현했다)
일단 기존에 PT에서 했던 운동들을 리스트업 하고, 헬스장에 있는 모든 기구를 사진 찍어 AI를 통해 리스트를 받았다. 유튜브를 통해 기구 사용법과 주의점을 익힌 후, 낮은 무게부터 배운 대로 시도하고 세세한 내용들을 기록했다.
첫 주엔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고, 기구도 스스로 세팅하다 보니 근력운동만으로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주정도 지나고 사용법에 익숙해지니 시간이 절약되어 유산소도 추가했다.
매일매일 운동 내용을 기록해서 지피티와 클로드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고 운동 계획을 세운다.
전문가에게 직접 PT 받을 때는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만 했다. 다행히 좋은 트레이너를 만나 운동을 하는 법도 좀 알고, 운동에 재미도 붙였다.
약간의 이해도가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계획을 짜고 주도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너무 재미가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매일 하고 싶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해서 주 4일로 하는 중이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체력과 건강도 있지만, 다치지 않고 오래 운동하는 것이라 쉬라고 할 땐 기가 막히게 잘 쉰다. 다쳐서 천장만 바라봐야 할 때의 무력감과 우울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조금 느리더라도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돈보다 시간이 많아지니, 식비를 줄이는 건 수월했다. 일단, 쟁여두지 않고, 필요한 건 그때그때 구입한다. 썩어서 버리는 쓰레기도 없어졌고, 빨리 먹어야 한다는 초조함과 압박감이 사라졌다.
주도적으로 운동을 하니 욕심이 생겨 단백질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대신 단백질 파우더에 기대지 않고, 음식에서 최대한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닭가슴살 수비드를 해서 먹거나 낫또, 계란, 그릭요거트, 두부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릭요거트나 닭가슴살이 사실 싼 편이 아니다. 생닭가슴살 200g에 4-5불 정도 한다. 그래도 건강엔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낭비한다는 말은 아니다. 디저트는 끊었고, 탄산음료는 많이 줄였다. 한번 그렇게 줄였더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른 건 다 끊어도 끊기 힘든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햄버거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쿠폰 할인을 받아도 세금 빼고 10불이 넘었다. 그래서?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요즘 성시경의 또띠아 버거로 햄버거욕구를 채우는 중이다. 싸고, 맛있다 보니 프랜차이즈 버거가 아직은 생각나지 않는다.
집 근처 도보 5분 거리에 마트가 두 개나 있는데, 한인마트는 3km가 떨어져 있다. 갈 때는 운동삼아 4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올 때는 무거울 테니 지하철을 타야 한다. 하, 근데 토론토 지하철 툭하면 운행을 안 하거나 지연이 일상이고, 요즘엔 지하철에 이상한 사람도 너무 많다. 뭐 몇 개 살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가려니 망설여진다. 그래서 결국 김치도 담가 먹었다. 내 요리 철칙은 무조건 간단해야 하는 거라, 배추를 절이지 않아도 되는 알배추 겉절이를 담갔다. 처음 만들어 본 성공적인 김치에 동네방네 자랑을 해댔다.
어쨌든 하루 15불 정도를 식비로 잡고, 먹고 싶은 것 먹어가며 식비를 줄여가고 있다.
일을 할 땐 기가 다 빨려 지쳐서
밥이고 뭐고 배달음식 먹고 빨리 티비나 보며 쉬고 싶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린 적도 많이 있다.
운동도 재미있었지만, 어느새 기계처럼 뇌를 옆에 두고 시키는 것을 했다.
나는 그냥 생활비를 줄이려던 것인데..
나 혼자 사는 이 공간에서.
마트에서 장 봐서 내가 먹을 것을 만들고, 먹고, 치우고.
땀 흘려 운동하고,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런 모든 순간들이 재미가 있다.
시간이 생기고, 쫓기는 게 없으니 여유라는 게 있어졌다.
살아남으려다 얼떨결에 사는 재미를 배워간다.
아,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 뭔가 일이 있으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환경이 주어져야 여유가 있어진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어쨌든,
결론은,
요즘은 내가 토론토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 메인 사진은 2026년 1월 25일 토론토에 폭설이 내리던 날, 동네를 산책하다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