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 86년생의 Go Back 하고 싶은 고백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시 나아가는 길 위에 있다

by Hiraeth

86년생, 나이는 38에서 40이다.


토론토에서 혼자 거주 중이다. 학생비자, 워킹비자를 거쳐 2022년 취득한 영주권 신분으로 있다. 처음 캐나다행을 결심한 게 2015년 5월이었고, 그땐 한국나이로 서른이었다.


서른, 모아둔 돈은 집 전세 4천만 원이었다. 현실이 싫어서라기보다, 하고 싶은 게 생겨서 퇴사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며 영어를 잘하면 사는 게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영어 공부 하러 토론토로 왔다. 근데 언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느냐고! 학창 시절 내내 등한시했는데! 이대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너무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영어 공부를 하고 컬리지에 갔다. 공부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왕 이렇게 된 거 해외에서 일도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선 영주권을 따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적고 나니, 영어가 안늘어서 결국 영주권까지 따는 결과가 된 것 같다. 이게 바로 "오히려 좋아"인가?


평생 캐나다에 살려고 영주권을 따려고 한 건 아니다. 내게 선택지를 하나 더 주고 싶었을 뿐이다.

늘 나는 결국 언젠간 한국에 돌아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2025년,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한 지 10년째이다.

어느새 마흔이다(또는 언저리).


2022년부터 열심히 저축도 하고 투자도 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평균자산 근처에도 못 간다. 집 없고 월세살이다. 서울에도 집이 없다. 시골 출신이다. 차 없고 장롱면허다. 차가 무섭다.

3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언제 나를 해고하거나 없어질지 불투명하다. 심지어 나는 개발자다. 개발 잘 못한다.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AI 바이브 코딩이 내 세계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버스 못 탄다. 몇 시간이 걸려도 돌아간다.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근처 화장실부터 확인한다. 4년 전에는 몇 개월마다 허리디스크가 재발해서 2주씩은 가만히 누워 있어야 회복이 되었다. 그 당시엔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30분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러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시작되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한 직종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내 다음 직업은 무엇이고, 언제 시작해야 할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중엔 또 뭐 해 먹고살지?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사람 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저축만으로는 노후에 손가락만 빨게 생겼다. 자산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지?

언제 어떻게 역이민 해야 하지? 역이민을 하면 뭐 해 먹고살아야 하지? 어디 살아야 하지? 회사들은 다 서울에 있는데, 나는 월세를 못 낼 것 같은데... 시골은 회사가 많이 없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20대 30대 초반엔 하지 못했던 많은 경우의 수들이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고민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이고, 그 나은 삶은 한국에서 보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올 때 아무 생각과 계산 없이 와서 하나씩 해나간 것처럼, 이제는 그렇게 무턱대고 돌아가서 생각해 볼 수는 없다. 아직 젊지만, 한국 사회에선 퇴직에 더 가까운 나이. 내가 벌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자산상태 등등.

그렇다고 이런 생각만 하며 허송세월 낭비할 여유도 없다.


그래서 몇 가지를 시작했다.


1. 이직

제2의 직업을 찾는다면서 왜 이직이냐고? 난 지금 먹고살 돈이 필요하다. 갑자기 모든 걸 다 뒤로 하고 도전할 직종도 아직 모르겠다. 사과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입 벌리고 있고 싶지는 않다. 이 직종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긴 해야 한다. 할 만큼 해봐야 나중에 후회도 없다.


2. 앱 개발

나는 개발을 잘 못한다. 근데 AI가 비전공자도 앱을 만들게 도와주는 세상에서 내 개발 실력이 무슨 소용인가?

어쩌면 정말 잘 된 일이다. 나도 내가 부러워했던 누군가처럼 이제 뚝딱뚝딱 뭔가 더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일단 내가 필요한 것부터 하나하나 실험 삼아 만들어서 공유해 보자.


3. 브런치 매거진

최근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보았다. 공감 가는 대사와 내레이션들이 많았다. 드라마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냥 내 마음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평범하고, 세상엔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내가 0부터 해나가는 과정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다음 직업, 그들의 현재의 삶에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여하튼, 이 매거진의 원래 이름은 "86년생의 Go Back 하고 싶은 고백"이다. 근데 매거진 글자제한이 있어서 본의 아니게 제목을 바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직과 앱개발 그리고 다른 발걸음들의 진행사항을 연재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체력 관리나 허리디스크 회복 과정처럼,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들과 그 해결을 위한 작은 실천들을 공유할 생각이다.


참고로 이력서 내기 시작한 건 145일이 되었고, 앱 개발은 저번주에 시작했다. 다음 주엔 취업시장, 이직 관련에 대한 이야기를 더 풀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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