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캐나다에선 이직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매일 이력서를 준비하는 해외 개발자의 삶

by Hiraeth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시간이 아는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많다. 앞으로도 많을 것 같다.


뭘 하기 싫은지는 줄줄이 나열할 수 있는데, 뭘 하고 싶은지를 내게 묻는다면 머뭇거리다 해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뭔가 앞뒤 안 따지고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손에 꼽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남들 다 대학 때 다녀온 어학연수를 서른이 되어 지금 당장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그런 귀한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고 바로 실행하는 편이다. 대신 단점은 준비가 부족할 수 있다. 대신! 장점은 뭘 잘 몰라서 겁 없이 할 수 있다.


아마 지금의 경험을 가지고 다시 서른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까?

모르겠다.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해고가 자유로운 문화"때문이다. 토론토에 와서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미처 몰랐다. 3개월의 프로베이션이란 게 모든 회사에 적용되는 것도 몰랐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대학을 졸업 한 후 공채로 입사해서 수습기간이란 것 자체를 겪어 보지 못했다.


난 다른 개발자들처럼 뛰어나지도 지식이 많지도 않다. 그렇다고 영어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어쩌다 운 좋게 첫 직장을 8개월 만에 구했다. 아, 아니다. 생각해 보니 운도 있었겠지만, 진짜 노력도 많이 했다.


나는 내향적이고 낯가림도 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테크 모임(meetup)을 다 찾아다니면서 명함을 돌렸다. 물론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만드는 건 기본이고, 그 당시 취업에 도움 될만한 웬만한 튜토리얼은 다 따라 해본 것 같다. 지금은 HR 스크리닝 콜은 준비를 안 해도 대충 대답할 수 있는데, 그 당시엔 질문 자체를 못 알아 들어서 예상 질문과 답변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달달 외웠다. 쿡 찌르면 나오는 수준이었다. 이력서도 300개 이상은 냈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렌트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는 모아둔 돈에서 해결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가 인생에 가장 큰 암흑기였다. 이 시기를 지나며, 나라는 사람도 많이 어둡게 변한 거 같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채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돌아가서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보다 괜찮은 직장을 구할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까 무섭고 창피했다. 뭐 그냥,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해외 가서 놀다가 들어온 노처녀"쯤으로 보이겠지. 사실 그런 말을 듣는 나는 괜찮은데, 부모님이 창피해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시골이라 서로 다 아는 사이에 말도 많고 소문도 빠른데.. 뭔가 불효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2025년도의 나는 이제 이런 건 개의치 않는다. 누가 뭐 래든 뭔 상관)


여하튼 그래서 버텼다. 그렇게 어렵게 첫 직장을 구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모든 회사에 수습기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수습기간을 잘 넘겼더라도 하루아침에 내 옆에 동료가 없어질 수 있다는 걸.


이렇게 힘들게 구한 직장,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이 올까봐 매일매일 전전긍긍했다. 자율출근, 재택 등 문화는 자유로웠지만 결과로 보여줘야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혹시라도 내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길까 봐 숨이 막혔다. (사장은 유독 버그에 민감했다. 그 회사를 나오고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듣게 된 건데, 나중엔 배포를 하고 3번 이상 버그가 생기면 개발자를 잘랐다고 한다.) 현재 회사에서는 3년 반째 일하고 있는데, 자잘한 해고 말고도 크게 3번의 레이오프가 있었다. 그렇게 해고 문화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럼 나만 잘하면 될까?"

그것도 아니었다.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전회사는 결국 문을 닫았다. 잘되던 스타트업이 비즈니스를 팔아서 기존 직원들이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큰 회사 같은 경우엔 팀이 없어지기도 한다.

작은 회사에 가도 문제, 큰 회사에 가도 문제..


"누구나 가슴에 퇴직서를 품고 다닌다"라고 하는데, 그건 적어도 그만두는 걸 선택하는 게 나라도 되지...

여기선 언제 백수가 될지 모르니 항상 직장을 구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개발자로 이직을 그럼 뭘 준비해야 할까? 큰 기업은 알고리즘 문제와 시스템디자인, 그리고 나머지 기업들은 기술면접이 천차만별이다. 회사마다 원하는 기술, 경험도 다 다르고... 면접 프로세스는 기본이 서너단계이다. 모르겠다. 뭐 내가 개발자 이직을 준비하는 블로그는 아니니까 모르겠단 말로 마무리해야겠다.


여하튼,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아직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이직도 준비 중이다.


2025년 2월부터 이력서를 내기 시작해서 글을 쓰는 오늘 149일째다.


총 172개의 이력서를 냈다. 서류 광탈 연락은 53통 받았다. 많은 회사가 서류 통과 관련 연락은 안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연락이 안 오면 그냥 서류에서 탈락했구나 생각한다.

총 3번의 면접 진행이 있었다. 그중 두 번은 아는 사람 레퍼럴을 받아서 진행되었고, 두 번다 몇 번의 단계를 통과했지만 결국 잘 안 됐다. 한 번은 기술 스택도 아예 안 맞았는데 왜 진행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하이어링 매니저 선에서 끝났다.


이력서를 100개 넘게 냈는데 결국 레퍼럴 빼면 한번 이력서가 통과된 거다. 이력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몇 주 전에 수정을 조금 하고 50개 정도를 새로운 이력서로 더 냈다.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 HR 스크리닝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HR 스크리닝은 이력서 통과 후 가장 첫 단계로 내가 사람인지, 말은 통하는지, 연봉 기대치, 비자 상태 등을 체크하는 듯하다. 기술적인 면접은 아니다)


그동안 몇 번의 취업준비를 했지만, 올해가 가장 서류 통과율도 낮고 더 까다로워진 것 같다. 이력서를 300개는 내고 싶었는데 낼 곳도 없었다.


매년 사는 것도, 취업도 더 힘들어지고 있다.

원래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게 사람 사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다.


다음 주는 돈 얘기를 해보려 한다.

한국에서 번 돈을 캐나다에서 다 쓰고, 2022년부터 다시 모으기 시작한 이야기, 노후대비에 대한 고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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