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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un 12. 2021

정신병인가....

1.


정신병인가....




썩은 과일을 갑자기 보면

나는 그만 온몸의 힘이 빠지고

마지막 순간의 엄마와 만난다.





2.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건조기가 잘 돌갔나 싶어 베란다를 기웃거렸다.


데 그 옆.

처참히 무너진 바나나를 보고 흠칫 놀란다.  


어젯밤까지 분명 비교적 잘 매달려 있었는데....


밤새 이렇게 될 수 있구나.




3.

바나나를 봤을 뿐인데

2년 반 전쯤 호스피스 의사가 보여준 그래프가 떠오른다.


암환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는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고.

급격히 하향 곡선을 그린다고.


그날은 금세 오곤 하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소화가 안되서 병원을 찾은 엄마는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혹독한 항암을 괜히 다하고

실제로 호스피스 의사가 예측한 시간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났다.




4.

며칠 전

30세 유투버 '새벽'의 생전 동영상을 보고

그 조잘대는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혈액암으로 죽기 한 달 전의 영상이었는데

죽음을 한 달 앞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꽤나 멀쩡했다.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러나 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병원에서 좀 안 좋은 소리를 들었는데,

그건 그때 생각하려 해요~'라고 남 얘기하듯 말했다.


생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이의 생전 동영상을 보고

그녀와 거의 5년을 사귀었다는 남자 친구 걱정을 했다.

그 동영상 안에서 혈액암 걸린 딸의 밥상을 차려내는.

상반신만 나온 엄마 걱정도 했더랬다.



나는 아마도 그들을 빌미 삼아

내 걱정을 했나 보다.



바나나를 보고도

가만히 주저앉게 되는 나처럼


그들도 꽤 오랜 시간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겠지.

생의 유한함에 소름이 끼치며.




4.

오늘 오전 11시.

또 한 분의 천국행 소식을 들었다.


한 달 전쯤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는데...

결국이구나.

 

소천 시각을 보니,

어제 새벽 1시다.


그 새벽 바나나는 혼자 무너진 게 아니였다.


나는 그녀의 어린 두 아들과

젊은 남편과

엄마와

두 여자 형제의 사진을 보며

깊은 슬픔을 느낀다.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남은 자의 슬픔은 실재다.

 


바나나. 사과. 배 따위와 함께 떠오르는

사랑하는 내 엄마, 딸, 연인, 아내.










2021..06.12 바나나



2021. 5월. 어느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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