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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Jun 15. 2021

피부관리로 월 200을 쓰지는 않아도

행복의 기준

1.

내가 20대 때 지인에게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신선했던 말은 이거다.





나는~~
피부관리실에서
월 200만 원씩 쓰게 해 주는 남자랑 결혼할 거야~~




그 당시 나는 온갖 이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결혼상과 남성상을 붙들고

결혼시장을 헤매고 있었다.



착하고 자상하고 능력 있고 자신감도 있고 대화되고 책임감 있고 종교도 같고  가족도 맘에 든 남자를 찾고,


그러고 나서

그 남자가 또 나를 좋아하는 일은

퍽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그에 비해

그녀의 기준은

아주 명료하고 구체적이고 단순했다.



말의 내용과 관계없이

어쩌면 걔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잘 알았을까?


말의 내용과 상관없이

어쩌면 걔는 그렇게 행복의 기준을

구체적인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었을까?



구체적으로 부탁할수록

그 부탁이 만족될 확률이 크다.


이건 비폭력대화에서 늘 강조되는 거다.






2.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

문득 나에게 묻는다.



너는 얼마면 돼?




나는 금세 대답한다.




난 15분이면 돼.






해가 지는 하늘을
하루마다 15분씩 보고 싶어.






3.

오늘 저녁은 원어민을 모셔와 영어 기말고사 문제를 검토받는 날이다.

저녁 7시에 온다길래

퇴근시간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나와

걷고 또 걷는다.


얼마 만에 혼자 걷는 해 질 녘인지.


초과 근무일이 휴일이 되는 워킹맘의 역설.





나는 정말이지 이거면 되는구나.


나도 이제 비로소 나를 알게 된 것 같다.

나도 이제 내 행복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 행복을 누리는 데

200만 원이 아니라 200원도 필요 없다니.




오지게 기쁘다.




따끈따근 해질녁 사진



온도 26도.미세먼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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