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시험 보러 가는 날 엄마 생각

by 유하나

어제 인생 처음으로

토익시험을 보았다.


박사 졸업을 하려면

맞춰야 하는 어학 점수가 있었다.


9시 20분 정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는데

그전까지 집에서 바빠죽는 줄..


왜!

아이들은 휴일에는 빨리 일어나는가?


왜!??? 왜?!!!!


원래는 아침에 좀 책을 보다가 가려고 했는데

책은 개뿔.


이 날따라 엄청 빨리 일어난 아들과

또박또작거리다가


그래도 뇌를 써야 하니까

뭘 먹어야지~ 하며


내 밥 내가 차려먹고

내가 치우고

내 자식이 먹을 것까지 차려놓고 나오는데

뭐지?


이제 시작인데

이미 한 차례 털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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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고 있다가

아빠 일어나면 같이 점심 먹고 만나자고

차려놓고 나왔다.

손으로 집어먹을게 뻔해서 포크까지 준비해줌


하필이면

토익 시험 후에는

바로 교회 갔다가 여행을 가기로 해서

어젯밤에는 그 짐까지 싸느라..


워터파크 준비물이나

스키장 갈 방수바지..

끝이 없다~

장화가 작아져서 로켓배송으로 시켰고~

새벽에 온 장화 사이즈 맞는지 신겨보고 난리.


이런 아이템들은

집안에서 나밖에 어디 있는지 모른다 ㅠ.ㅠ.


짐을 한 80프로 싼 것 같은데

시험 시간이 되어서 그냥 나왔다.


남편에게 마저 싸 달라고 하니

"해외도 아니고~ 뭐~ 없음 어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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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무도 안 듣는 허공에 대고

혼자 선포했다.


모든
짐에 대한
최종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을
확실히
천명합니다!!!



결국 여행 와서 보니

내 여벌옷이 하나도 없고

내 잠옷 상의도 없고

애 팬티도 없어서


난 어제 그냥 외출복 입고 잤고

애는 갑자기 평소에는 팬티도 안 갈아입으면서

어젯밤에는 뭐가 묻어서 팬티를 갈아입어야 한다고 새벽에 깼길래

손빨래해서 말려 다시 입혔다.

싸다 만 짐


그래서

토익 날 아침까지

토익 따위는


'아 그거~~~? 내가 보는 거지?'

일부러 애써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시험장을 가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임용고사

그리고 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있었던 시험들.


그런 날 아침마다

엄마 집에 살았던 나는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을

"좀 먹을까?~ 말까?"만 취사선택하면 되었다.


엄청나게 충실한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늘 5찬 정도와

고기 or 생선 반찬을 준비했고

늘 국 3-4개는 돌아가며 끓이며

정성껏 아침을 차려주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자존감

안정감

근자감은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밥상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당시

엄마의 그 밥상이 너무나 당연해서

찍어놓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이

그저 놀랍다.


아마 내 모든 시험날에는

부모님이 시험장에 태워다주고 간식까지 챙겨줬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있었네.



토익 시험장에 갔더니

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복도 유리창에 바짝 붙어

유리창을 보고

혼자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고 있다.


"아이고~~ 청년~

아침도 안 먹고 왔어~~~?

뇌를 쓰려면 뭘 먹어야지~!!


지금이라도 이렇게 챙겨 먹고 있으니

잘했다 잘했다~"하며

궁둥이를 팡팡 쳐주고 싶었는데

성추행으로 고발당할까 봐

참았다.


밥 차리는 엄마가 되고 보니

세상 모든 이의 끼니까지 보이고

참으로 성가시다.




요즘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는 '엄마+ 어떤 것'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지는구나.


어제 토익 한번 보려는데

뭔가 참으로 힘들었다.


늘 머리를 굴리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일상이 덜 종종거릴 것인가?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커야

좀 여유가 생길 것인가?

(이미 아주 많~이, 아주 많~이 나아졌지만)


그러다가

토익 시험장 화장실에 적힌 글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인생은

나 같은 엄마뿐 아니라

엄마 밥 먹고 다니는 중학생에게도!!!

이렇게 힘든 것인데!!!!!



인생은 고달프다..

하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어떻게 서든 파해쳐 나가야만 한다.


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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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모든 나이

모든 상황

모든 이마다 나름의 씨름이 있겠지.


맞은편에 앉아 체스를 두고 있는

아홉 살 준이에게 불현듯 묻는다.


"준아. 너한테 인생은 어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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