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예상대로 열세 살 시호는 갑자기 느닷없이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에 팍! 기분이 상한 목소리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 하~ 할머니가 나 때문이라는데?" 한다...
워매. 설마 전화해서 얘기하실 줄이야. 나이불문 국적불문 모든 남자들에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면바로 '억울함'이라는데 이번 일은 네가 '진짜 억울한 일'인 거 숙모가 인정! 한다!
어머님은 전화로 퍼붓고 나서 힘이 쭉 빠지셨는지 돗자리에 그냥 스르르 누우셨다.
나는 새벽 4시 반에 싼 김밥들과 나란히 누워계신 어머님을 본다.
늙고 마른 어머님.. 가족밖에 모르는 어머님..
연민이 올라왔다.
어머님은 가족들을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힘껏 썼는데 가족들은 김밥이 그 정도로 감사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이 김밥 사건을 둘러싼 광경은 소재만 달리해서 시댁에서 무한 재생된다.
직접 만든 찰밥 사건. 직접 빚은 만두 사건. 입으면 좋을 것 같다고 사 오신 아들 겨울 외투 사건 등으로.
어머님은 인정. 감사를 받고 싶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것도 맞지만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사실. '자신의 정신적 안정'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힘들고 짜증 나고 쟤가 이 걸해 줬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 욕구를 따라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정서적 안녕'을 지키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 신경 쓰이지 않게 좀 잘 먹으라고! 너네가 빵 같은 거. 배달해먹는 음식 먹으면 나쁜 게 많이 들었을 거라 내 마음이 너무 걱정되고 신경 쓰이고 두렵다고!'
이런 어머님의 마음은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시고 가족들 사이에서 푸념과 잔소리. 비난으로 둥둥 떠다닌다.
3. "어머님. 저도 그래요."
어머님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다.
친정엄마가 위암으로 위의 3분의 2를 자르고 그리고 분명히 완치되었다고 했는데. 10년을 사시다 다시 돌연히 위암이 온몸으로 퍼져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위암 환자였던 엄마의 식단으로 10년을 먹었다. 그리고 소화기관이 아프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죽어가는지 그 과정을 모두 보았다. 음식은 몸에 직격탄이다.
먹은 음식은 그냥 내 몸이 된다.
예를 들어 노란 색깔 단무지는 색소가 있어서 실제로 엄마 배를 아프게 하고 색 없는 단무지는 엄마 배를 안 아프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고 지금도 음식을 시킬 때 오는 노란 단무지는 다 버린다. 내 입에는 안 넣는다. 남편은 성인이니까 그의 입에는 최대한 안 들어가게 막아보지만 먹는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단무지는 빙산에 일각이다. 단무지 외에도 엄마 덕에 수많은 음식에 대해 예민한 영육이 길러졌다. 그래서 4세 아들이 뭘 먹는 걸 보면 어머님의 심정에 버금가는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토마토 주스를 먹이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저 주스가 몸 전체를 돌며 독소를 없애는 것 같다.
색소가 가득 든 까까를 십일쯤 굶은 애처럼 퍼먹는 걸 보면 내 맘이 그렇게 괴롭다. 독을 먹는 것 같이 보인다. 저런 게 쌓이면 암이 될 것만 같다.
아들은 두 살 때 할머니를 잃었기에 할머니 관련된 모든 히스토리를 평생 아무리 말해주어도 나만큼 생생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음식을 둘러싼 나의 욕구와 그의 욕구는 아마도 한참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4. 나머지 김밥의 운명
다시 김밥으로 돌아가서....
어머님의 짜증은 다 해소가 되지 않은 채
우리와 같이 콘도에 도착했다.
이번 화풀이 대상은 아가씨가 점심 먹고 남겨온 빵 봉지다.
"이런 거 먹으면 뭐가 좋다고!" 하시며
빵 봉지를 밀어 내 저~멀리 던지셨다.
아가씨는 참다 참다 '아~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받아쳤다.
나는 저 멀리 나동그라져있는 소시지빵을 주시했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티 안 나게 거실 이쪽에서 거실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척하며 하나씩 집어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제대로 어부지리다.
어? 그런데...
빵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상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은 빵을 몰래 집어먹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남편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 수북이 쌓인 김밥을 두고 어머님 몰래 남은 빵을 몰래 먹는 빵 동지가 되었다.
다행히도 어머님의 김밥은 모든 사람이 그날 오후 힘껏 먹어 3줄 빼고 다 소진되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려나?
다음날 아침
남은 김밥은 세줄.
이 세줄의 김밥은 어머님의 예언대로 쉰내가 나서 버려졌다. 몇십 년 살림왕이신 어머님의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정확했다. 하루 안에 다 먹어치울 수 있다는 나의 위로의 말은 소리만 요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