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어머님의 김밥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1화

by 유하나

1. 새벽 김밥



시댁 가족과 여행을 갔다.
서울에서 홍천 비발디파크로 가는 길은
원래는 1시간 반이면 떡을 친다.

그런데
휴일 대목이라 4시간 여가 걸렸다.

아가씨네 차와 시부모님을 태운 우리 차가 만나서

중간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다.
어머님은 김밥을 싸오신다고 했다.

나와 남편. 아가씨는 이구동성으로
'어머님 힘드니까 김밥 싸시지 마세요~
가다가 사 먹어요' 했지만
사실 말만 하고 별 대안은 세우지 않았다.


늘 가족여행의 식단 계획자는 어머님이기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머님은 김밥을 10줄 넘게 싸서
이른 아침 우리 차를 타셨다.

아가씨네와 중간중간 연락하며
피크닉 장소와 시간을 논의했지만
쉽지 않았다.
차가 너무 막혀서 다들 지치고 배가 고팠다.

결국 우리 차가 먼저

보이는 아무곳이나 한가한 강가에 자리를 깔고 아가씨네를 기다리기로 했다.


김밥을 차려놓고 아가씨네에게 전화했을 때
아가씨네는 이미 그곳을 지나쳤고 했다.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밥을 먹겠다고 했다.
나와 남편도 적극! 그렇게 하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밥 먹음'보다
그들의 안녕이 더 중요했다.
우리도 지쳤기에 그들이 지쳐있다는 것을 마음 가득히 공감했다.

아가씨네 가족은 결국 근처 야외 카페에서
사 먹었다.
두가 만족스러웠다.



딱 한 분만 빼고..



2. 어머님의 폭발


점심을 따로 먹자는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어머님은 폭발하셨다.


모든 사람의 욕구가 채워졌는데
어머님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 짜증 나~~~!!!!
어제 한살림 가서 가족 먹인다고 재료도 엄청 비싼 거 샀는데!
보통 때 사지도 않는 한살림 맛살도 5천 원이나 주고 샀는데!

아이고~~~~
오늘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쌌는데!


이거 다 버리게 생겼다~~~
내일 되면 다 쉴 건데!!


(갑자기 미안해졌다. 난 이날 아침
9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충분히 자서 컨디션도 기분도 좋았다.)

"아니~ 시호(첫째 시조카)가 아까 분명히 팔당대교도 안 지났다고 하지 않았냐?!
이상해~
어떻게 팔당대교도 안 지났는데
벌써 여길 지나갔다는 거야?~ ''

nvc를 한창 삶 속에 실험하고 있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님께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어머님~ 고생해서 가족들 먹이려고 싸셨는데
다 같이 못 먹어서 짜증 나고 속상하셔요?
있다가 콘도 가서 저녁때도 먹어요 우리~''

''짜증 나지~!
4시 반부터 샀다~
있다가 언제 먹냐?
저번에도 쉬어서 다 버렸다니까~

아니 시호가 분명히 잘못 알았어!
분명히 팔당대교도 안 지났다고 했는데~''

어머님은
'가족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ㅡ> 아.. 이건 뭐라고 줄여 말해야 할까..?

'도움?' 일까?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으셨을까?

그런데 죄송하지만.... 이 도움은 '요청한 적이 없는 도움'인데....

어머님의 이 순간 '좌절된 욕구'가 무엇일까.
가족으로부터의 '감사와 인정'일까?

그것보다는
'함께 있음.
함께 먹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너네들도 중요하다 생각해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공감일까...


그런데 준이 쫓아 밥 먹이러 다니느라고 이후 계속 어머님과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네 살 된 준이마저 어머님의 김밥 거부;;; ㅠㅠ


(그래. 네가 뭘 알겠니.
너라도 마구 먹어주었다면
함미가 행복하셨을 텐데..
그런데 함미에게 위로를 드리라며
안 먹겠다는 김밥을 강요한다면 그 행위는 또 얼마나 큰 폭력인지!)


어머님은 좌절된 욕구 때문에 화가 나서
비난할 대상을 찾고 계신 듯했다.

계속 어머님은 '아무래도 아까 통화할 때 시호가 장소를 잘못 말한 것 같아~'라고 말하셨다.

나는 불안 불안해져서
''어머님~
시호한테는 있다가 가서
아무 말하지 마셔요~ ''라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나는 가족 간의 평화가 중요했다)

'설마 콘도 가서도 손주한테 계속 이러시겠어?'
라는 각이 들었고,
내 말이 안 그래도 편치 않은 마음에

월권이자 오지랖 같 들릴까 하여
말하지 않는 걸 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초 후 어머님이 전화기를 드시더니.
내가 우려했던 바로 그 행동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 야~ 이시호!!!~ 네가 아까 팔당대교도 안 지났다며~
분명히 이상해~
너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된 거잖아~
근데 지금 너네 뭐 먹냐?~
뭐?

빵?

여기 김밥도 있는데!
아이고~못 산다 못살아~~~~~~^*-:/!%?-(:.@;!'!-!:/,:;@-(1,2,3절 도돌이표 시작)'

아...
예상대로 열세 살 시호는
갑자기 느닷없이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에
팍!
기분이 상한 목소리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 하~
할머니가 나 때문이라는데?" 한다...

워매. 설마 전화해서 얘기하실 줄이야.
나이불문 국적불문 모든 남자들에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면 바로 '억울함'이라는데
이번 일은 네가 '진짜 억울한 일'인 거 숙모가 인정! 한다!

어머님은 전화로 퍼붓고 나서
힘이 쭉 빠지셨는지
돗자리에 그냥 스르르 누우셨다.

나는 새벽 4시 반에 싼 김밥들과 나란히 누워계신 어머님을 본다.


늙고 마른 어머님..
가족밖에 모르는 어머님..

연민이 올라왔다.

어머님은 가족들을 위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힘껏 썼는데
가족들은 김밥이
그 정도로 감사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이 김밥 사건을 둘러싼 광경은
소재만 달리해서 시댁에서 무한 재생된다.

직접 만든 찰밥 사건.
직접 빚은 만두 사건.
입으면 좋을 것 같다고 사 오신 아들 겨울 외투 사건 등으로.

어머님은 인정. 감사를 받고 싶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것도 맞지만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사실.
'자신의 정신적 안정'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힘들고 짜증 나고 쟤가 이 걸해 줬으면 좋겠고~ 하지만
그 욕구를 따라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정서적 안녕'을 지키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 신경 쓰이지 않게 좀 잘 먹으라고!
너네가 빵 같은 거. 배달해먹는 음식 먹으면
나쁜 게 많이 들었을 거라
내 마음이 너무 걱정되고 신경 쓰이고 두렵다고!'


이런 어머님의 마음은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시고 가족들 사이에서
푸념과 잔소리. 비난으로 둥둥 떠다닌다.



3. "어머님. 저도 그래요."



어머님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다.

친정엄마가 위암으로 위의 3분의 2를 자르고
그리고 분명히 완치되었다고 했는데. 10년을 사시다 다시 돌연히 위암이 온몸으로 퍼져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위암 환자였던 엄마의 식단으로 10년을 먹었다.
그리고
소화기관이 아프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죽어가는지
그 과정을 모두 보았다.
음식은 몸에 직격탄이다.

먹은 음식은 그냥 내 몸이 된다.


예를 들어 노란 색깔 단무지는 색소가 있어서
실제로 엄마 배를 아프게 하고
색 없는 단무지는 엄마 배를 안 아프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걸 보고 지금도 음식을 시킬 때 오는 노란 단무지는 다 버린다.
내 입에는 안 넣는다.
남편은 성인이니까 그의 입에는 최대한 안 들어가게 막아보지만 먹는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단무지는 빙산에 일각이다.
단무지 외에도 엄마 덕에 수많은 음식에 대해 예민한 영육이 길러졌다.
그래서
4세 아들이 뭘 먹는 걸 보면
어머님의 심정에 버금가는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토마토 주스를 먹이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다.
저 주스가 몸 전체를 돌며
독소를 없애는 것 같다.

색소가 가득 든 까까를 십일쯤 굶은 애처럼
퍼먹는 걸 보면 내 맘이 그렇게 괴롭다.
독을 먹는 것 같이 보인다.
저런 게 쌓이면 암이 될 것만 같다.

아들은 두 살 때 할머니를 잃었기에
할머니 관련된 모든 히스토리를 평생 아무리 말해주어도
나만큼 생생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음식을 둘러싼
나의 욕구와 그의 욕구는 아마도 한참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차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4. 나머지 김밥의 운명


다시 김밥으로 돌아가서....



어머님의 짜증은 다 해소가 되지 않은 채

우리와 같이 콘도에 도착했다.


이번 화풀이 대상은 아가씨가 점심 먹고 남겨온 빵 봉지다.


"이런 거 먹으면 뭐가 좋다고!" 하시며

빵 봉지를 밀어 내 저~멀리 던지셨다.


아가씨는 참다 참다
'아~ 잔소리 좀 그만해~!'라고 받아쳤다.

나는 저 멀리 나동그라져있는 소시지빵을 주시했다.


눈여겨보고 있다가
티 안 나게
거실 이쪽에서 거실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척하며 하나씩 집어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제대로 어부지리다.


어? 그런데...

빵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상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은 빵을 몰래 집어먹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남편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 수북이 쌓인 김밥을 두고
어머님 몰래 남은 빵을 몰래 먹는 빵 동지가 되었다.

다행히도 어머님의 김밥은 모든 사람이 그날 오후 힘껏 먹어
3줄 빼고 다 소진되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려나?

다음날 아침


남은 김밥은 세줄.

이 세줄의 김밥은 어머님의 예언대로 쉰내가 나서 버려졌다.
몇십 년 살림왕이신 어머님의 예언은
노스트라다무스처럼 정확했다.
하루 안에 다 먹어치울 수 있다는 나의 위로의 말은
소리만 요란했다.

새벽 4시부터 어머님이 싸신 김밥 세줄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어머님의 마음을 전날보다 훨씬 알것만 같았다.





덧:

글을 쓰고 나니 가족을 향한 어머님의 사랑이 더욱 느껴져서

감사할 때 감사를 표현하고 살자고 다짐했다

바로 기회가 왔을 때 문자 하나를 날리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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